지난 1999년 출간된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김진송 지음)는 일제시대 경성의 도시문화를 조명함으로써 수탈과 저항의 이분법에 갇혀 있던 역사학계의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어 《모던 뽀이, 경성을 거닐다》(신명직 지음), 《경성자살클럽》(전봉관 지음) 등 국문학계를 중심으로 쏟아져 나온 근대 연구는 멋진 양장 차림으로 백화점과 카페를 드나들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1920년대부터 꽃피기 시작한 도시문화의 소비자로 주목했다. 2008년 말 김혜수·박해일 주연의 《모던 보이》라는 영화까지 나왔으니 출판계와 학계에서 먼저 불기 시작한 '모던' 붐은 이제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신하경 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

신하경(37·) 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가 이번 주 출간한 《모던 걸-일본 제국과 여성의 국민화》(논형)는 1920~30년대 조선을 강타했던 모던 유행의 뿌리가 일본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일본 쓰쿠바대 박사학위 논문을 풀어쓴 이 책에서 신 교수가 그리는 동경의 '모던 걸'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거의 비슷하게 등장한 경성의 '모던 걸'과 큰 차이가 없다. '모던 걸'은 관동대지진(1923년) 이후 1930년대에 걸쳐 도시 대중소비문화의 향유자로 등장한 서양풍의 패션과 단발을 한 여성을 가리킨다. 신 교수는 "1920년대 경성은 일본 유학생들의 교류와 신문·잡지 등 미디어의 영향으로 일본과 거의 비슷한 시간대를 살았다"고 말한다.

신하경 교수는 1920년대 백화점과 영화, 재즈댄스, 스포츠와 패션, 건축 등 다채로운 도시 소비문화를 구가하던 일본이 1930년대 들어 어떻게 군국주의 국가로 이행했는가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영화와 대중소설, 잡지를 통해 전개된 '모던 걸' 담론을 분석했다. 신 교수의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모던 걸 담론을 이끌어간 것은 과학을 신봉하던 모더니스트와 역시 과학을 표방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대중(여성)을 의식하고 이들을 동원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국가주의와의 이데올로기 경쟁에서 탈락했고, 결국 파시즘이 대중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신 교수는 "일본과 한국의 모던 걸은 현상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다르다"고 지적한다. 일본 지식인들은 일본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 어떤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문명론의 차원에서 '모던 걸'을 거론했지만, 한국에선 모던 걸을 신기한 도시 풍속쯤으로 주목한 게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다. 식민지 경성의 모던 걸이 대중소비사회의 뿌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외부로부터 수입된 '박래품(舶來品)'이 아닌가라는 비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신 교수는 "일본에서도 모던 걸의 실체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서구 여성을 모델로 상정해놓고 뜯어 맞춘 측면이 있다"고 했다.

1930년 도쿄 미쓰코시 백화점의 포스터.‘ 모던 걸’은 백화점의 주요 소비자였다.

신하경 교수는 1991년 연세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무렵은 대학가가 온통 시위에 휩싸였던 때였다. 집단의 폭력성을 실감했던 그는 집단보다 개인에 주목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끌렸고, 하루키의 원류를 만들어낸 1920년대 일본 근대 도시문화로 관심이 이어졌다.

일본 학계의 모던 걸 연구는 서구의 소비문화론과 젠더론의 영향을 받으면서 1980년대에 본격화됐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시동을 건 국내의 모던 연구 또한 일본 학계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신 교수는 "국내의 모던(근대) 연구는 일본의 영향도 받았지만 1990년대 이후 거대담론이 설득력을 잃고, 대중소비사회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일제시대를 저항의 역사만이 아니라 생활사·문화사로 접근하려는 데서 출발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