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북정마을 하수남(80) 할머니의 집에는 따스한 온기가 감돌았다. 사흘 전만 해도 하 할머니는 옷을 잔뜩 껴입은 채 냉기만 살짝 가신 전기장판 위에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수심 가득하던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20년 넘게 써 온 낡은 연탄보일러가 새 연탄보일러로 바뀐 덕분이다. 연탄가스 냄새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던 부엌 공기도 한결 맑아졌다.

"세상이 달라진 것 같아. 살 것 같다니까."

동네 이웃 허은덕(61)씨가 맞장구쳤다. "잘 계신지 가끔 들러보면 방이 너무 추워 오래 앉아 있질 못했어요. 지금은 방바닥이 뜨끈뜨끈한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서울의 저소득층 밀집지역 중 한 곳인 북정마을에는 400여가구가 모여 산다. 대부분 성능이 다된 구식 연탄보일러로 난방을 하기 때문에 겨울이면 추위가 가장 큰 걱정이다. 연료비조차 대지 못해 '냉골'에서 버티는 집이 적지 않다.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이하 인추협)는 이런 사람들의 낡은 연탄보일러를 성능 좋은 새것으로 바꿔주며 '뜨끈함'을 선물한다. 2008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북정마을의 140가구를 비롯, 종로구 창신동과 금천구 독산동, 대구 서호동 등 300가구에 무료로 연탄보일러를 설치해 줬다.

지난달 28일 오전, 고진광(56) 인추협 대표와 자원봉사자 최영섭(51)씨가 하 할머니 집을 찾았다. 건축설비사인 최씨는 고장 난 보일러를 뜯어내고 새 보일러를 설치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밥 벌어먹으려 배운 기술이 이겁니다. 이렇게 소중하게 쓰일지 몰랐습니다." 고 대표가 방금 도착한 김한수(72)씨를 반갑게 맞았다. 사업을 하는 김씨는 보일러 교체를 위해 지금까지 1000여만원을 기부했다. 김씨는 "나무 때서 불 지피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추웠던 기억을 지울 수 없다"며 "냉골에 사는 사람을 차마 두고 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성북동 하수남 할머니 집을 찾은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고진 광 대표(사진 가운데)와 자원봉사자 김한수(왼쪽)씨, 최영섭(오른쪽)씨가 새 연탄 보 일러를 설치해주며 활짝 웃고 있다.

보일러를 새로 달아주는 데 드는 돈은 20만원 정도다. 고 대표는 청계천 상가를 찾아 연탄보일러를 값싸게 구입한다고 했다.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부금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북정마을에 사는 이연희(75) 할머니는 "겨울에 집 안에서 두꺼운 잠바를 입을 필요가 없어졌다"며 웃었다. 이 할머니는 보일러가 고장 나 전기장판 한 장으로 작년 겨울을 보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손자 이은성(18)군은 "작년까지 방 안이 너무 추워 손을 불어가며 공부했는데, 올해는 방 안이 따뜻해 너무 좋다"고 했다.

독산동의 서양숙(79) 할머니도 전기장판 한 장으로 겨울을 넘겨오다 이번에 무료로 연탄보일러를 달았다. 서 할머니는 정부의 기초노령연금 8만8000원으로 생계를 꾸린다. 얼마 전에는 인근 복지관에서 방바닥에 두툼한 스펀지 장판까지 깔아줬다. "고맙지. 그런데 한 달 연료비가 5만원이 넘는다고 하네. 찬 기운만 가시게 하고 금방 꺼야지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