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가 서울에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지어달라고 우리 정부와 서울시에 줄기차게 호소하고 있다. 본지 11월19일자 보도

러시아 정교회 성당 건립 문제는 최근 콘스탄틴 브누코프 러시아 대사가 부임하면서 불거졌다. 브누코프 대사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비롯한 정·재계 인사들과 활발히 접촉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꺼냈다.

국내의 러시아인들은 그간 러시아 정교 성당이 없어 그리스 정교 성당에서 성찬예배식을 했다. 서울 마포의 이 성당의 공식 명칭은 한국정교회지만 실제론 그리스의 지원으로 건립돼 그리스 정교 성당으로 불려왔다.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국내에 체류 중인 러시아 정교 신자들은 이곳에서 20년간 더부살이를 해왔다. 정교 성당 별관에는 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에는 6·25 때 폐허가 되면서 남은 러시아 정교 관련 유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한국정교회 성당 벽화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소티 리오스 대주교(오른쪽)와 야누디스씨. 야누디스씨는 성화 전문가다. 소티리오스 대 주교는 1975년 한국 부임 이후 34년 동안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여기에서 예배를 봤다. 성찬예배식에 사용하는 성물과 정교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이콘(성상화)'은 러시아에서 공수해 왔다. 한국정교회 측이 배려한 것이지만 강대국 러시아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이 소식이 러시아 정교회 수장 알렉시 2세에 귀에 들어갔고 그는 한·러 정부를 대상으로 로비를 했다. 푸틴 정권 당시 알렉시 2세는 제정 러시아 당시 교회 재산 환수 운동을 벌이는 등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작년 12월 타계하기 전 알렉시 2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러시아 정교 성당 부지 제공을 요청했다. 외교부가 서울시와 문광부에 이를 타진했지만 "러시아의 입장은 이해하나 제공할 부지도 없다"는 입장을 전해들었다. 브누코프 대사의 공명심이 러시아 정교 부지 문제를 야기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러시아 정교측에 공식 문서를 전달했고 해결된 문제"라며 "러시아가 정교 성당을 세우려면 부지를 매입해 세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교는 1897년 러시아 정교회 주교회의에서 한국 선교를 결정하고 선교단을 보내려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다툼으로 포기했다. 한국 선교는 1900년 선교단 조직과 함께 신부가 파견되면서 시작됐다.

1903년 러시아 공사 관저에서 첫 성찬 예배를 했고 고종에게 하사받은 서울 정동 22번지(지금 경향신문 자리)에 성당을 건립했었다. 당시 러시아에서 가져온 7개의 종소리는 장안의 화제였다.

러일전쟁에 패하면서 러시아 선교단도 철수했지만 1906년 파벨 이바노프스키 수사 사제가 파견되면서 재건했다. 하지만 6·25 전쟁 당시 유일한 사제였던 김의한 신부가 납북되고 성당이 폭격을 맞으면서 사실상 정교회는 와해됐다.

한국에서 러시아 정교가 그리스 정교로 바뀐 사건이었다.

이 와중에서 그리스군 정교 종군 사제 안드레아스 할키오풀로스 신부가 본국에 도움을 호소하면서 1968년 성당이 재건됐다. 전쟁에 참가한 그리스군이 매달 1달러씩 모금한 것도 화제였다.

그리스 신부는 한국인 신도 문이춘의 사제 서품을 도왔고 문씨는 한국정부가 국가재산으로 편입하려던 성당 재산을 오랜 소송을 통해 되찾았다. 정동에 있는 성당을 매각하고 마포구 아현동에 건물을 지어 성 니콜라스 성당이라 명명했다.

1975년 그리스 정교에서 신부를 파견하면서 그리스정교회 소속 교구였지만 2004년 한국정교회라는 독립교구로 인정받았다. 정교회는 원칙적인 교리는 일치하지만 국가별로 체제, 제도가 다르다.

내년은 러시아 정교가 한국에 온 지 110주년이 되는 해이고 수교 20주년을 맞는다. 러시아에서 5년과 10년째는 국가적 축제를 하는 것이 관례다. 특히 매 10년째 해는 '유빌레이(대경축의 해)'로 불리며 성대한 행사가 열린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 논란은 이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러시아 정교의 현 위세라면 조만간 서울에 대형 성당을 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러시아는 이미 2006년 북한 평양에도 성당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