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도 학력고사 전국 수석, 1992년 사법고시 수석이라는 남다른 기록을 갖고 있는 원희룡 국회의원(한나라당).
원 의원은 비즈니스앤TV와의 인터뷰에서 수능 시험을 마치고 진로 선택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에게 “수능 결과는 인생의 초반에 불과하다”며 “인생은 길고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은 다양하기 때문에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뚝심과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원 의원은 “학생들의 학력은 매우 높아졌지만 손 쉬운 선발을 위해 시행되는 획일적인 입시 제도가 학생들에게 잔인함으로 다가온다”며 교육현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시각을 피력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Q. 고교시절, 원희룡 의원은 어떤 학생이었나?
A. 시골 중에서도 시골에서 제주도 제주시로 유학을 온 학생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놀기도 좋아했고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려 다녔는데
공부라는 목표가 있었으니까 괴로운 것도 참고 공부는 좀 독하게 했던 것 같다.
Q. 목표를 세워 꿈을 이루는 데 영향을 준 인물은 누구인가?
A. 우선 정말 빚쟁이한테 칼로 위협을 받아야만 했던 부모님을 뵈면서 가난에서 벗어나 넓은 무대로 갈 수 있는 자격을 가져야겠다는 나 스스로의 절박감이 가장 컸다. 그리고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많은 호기심과 새로운 세계를 동경했기에 위대한 학자들이 존경스러웠다.
Q. 그러던 와중에 학력고사 수석, 사법고시 수석이란 기록을 세웠다. 당시 주변의 반응은 어떠했나?
A. 황당, 충격 그 자체였다. 제주도 시골 촌놈이 중앙 매스컴의 각광을 받게 되니까. 졸지에 '제주의 아들'이 됐다. 시간이 조금 흘러 대학에 와 보니 또래들이 나 때문에 많이들 스트레스를 받았더라. 부모님들이 "시골에서 수석이 나왔다던데…… 내가 너희에게 못 해준 게 뭐냐?" 그러셨다 하더라. 친구들이 나한테 분풀이를 많이 했다. (웃음)
Q. 당시 언론이나 주변에 밝힌 각오는 무엇이었나?
A. 그때는 명확했다. 법대를 지망했는데 사실 나는 학문을 하고 싶었다. 법 사회학을 하겠다고 공언을 했는데 당시 제가 알던 법 사회학과 실제 학문과는 많이 달랐다.
Q. '공부가 가장 쉬었어요' 라는 말이 있다. 원 의원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돌이켜보면, 괴롭기도 했고 뭐가 그리 쉬웠겠나 싶다. 나는 호기심도 많고, 뭔가를 알아가는, 공부하는 재미는 알겠는데 입시를 위한 공부는 정말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얘기는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적은 이 세상일에서 어느 정도의 숙련과 요령이 생기면 자기의 노력 이상만큼 나올 수 있는 것이 공부이기 때문에 나온 말인 것 같아 어느 정도 공감은 한다. 하지만 이는 공부가 가장 쉽다기 보다 인생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의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Q. 공부를 하다가 좌절을 느낀 적은 있는가?
A. 많다. 한 달 두 달 손에 책이 잡히지 않아 앉아서 어금니 깨물고 엉덩이로 버티던 시절도 많았다. 특히 서른이 다 되어서 사법고시를 공부할 때는 이 공부를 왜 해야 하나 하며 고민도, 세상과 내면에 대한 방황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생을 많이 배웠다.
Q. 학창시절에 그나마 못하던 과목은 어떤 것이었나?
A. 그 시절 대학 본고사 문제가 아주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도 못 풀고 나도 못 푸는 수학 본고사 문제 때문에 사실 이과에 진학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조금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수학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고교시절 성적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난도 수학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Q. 그렇다면 사회 나와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A. '수석'은 '문제 푸는 것'에서 얻었던 칭호 같은 것이고, 사회나 우리 인생에서는 다른 것을 많이 필요로 한다. 공부는 잘했을지 모르겠지만 오랜 기간 변치 않는 인간관계,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을 포용할 수 있는 것에서는 조금 약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가끔은 내 스스로가 '바보'라고 느낄 정도다. 흔히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이런 말이 명문대 출신들에게 많이 따라다니는데 그런 속성이 내게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가끔 그런 비슷한 얘기를 들으면 찔리고 가슴이 철렁한다.
Q. 수석이라는 타이틀이 당시 학창생활이나 사회생활, 나아가서는 정치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A. 시선을 많이 받고 뭔가 특별한 사람일 것이란 선입관을 받기 때문에 그런 면 에서 거리감 같은 것이 있다. 어찌 보면 억울하기도 하고, 혜택을 받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대가라고도 생각한다. 사실 내가 특별하다거나 별나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걸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좀 더 자연스럽고 평범함 속에 진리가 있다는 걸 제 스스로에게 확인 시키려 한다.
Q. 현 입시제도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수험생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궁금하다.
A. 나도 자식들 공부하는 것을 보지만, 사실 지금 우리 학생들 공부하는 것을 보면 공부의 양이나 수준은 우리 때보다 높은 것 같다. 그만큼 세계가 발전을 했고 인터넷 환경으로 인한 정보가 많아져 학생들의 학력은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문제풀이 식으로 가다 보니까 스스로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문제 해결 형 자기주도형 학습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학원이나 과외 위주로 흐르다 보니 자생력이 약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객관적 기준을 토대로 한 시험이 학생 선발을 위해선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사실 이는 잔인한 방법이다. 어느 한 순간 시험 문제를 잘 풀었다는 것이 학문에 대한 열의가 높다거나 사회 문제를 푸는 능력이 뛰어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입시의 형태가 지금처럼 획일적이고 잔인하지 않은, 학생들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회를 많이 주는 쪽으로 흘러가야 한다.
Q. 수능결과를 앞두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A. 수능 결과가 나오면 물론 횡재도 있고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수능을 치르는데 있어서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노력과 능력이 중간평가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담담히 받아들이는 의연함이 필요할 거 같다. 물론 자기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주변과 의논을 잘 해서 진로를 잘 선택해야 할 테지만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이것은 겨우 인생 초반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나라 입시제도로 인한 프리미엄이나 불이익이 오래 가는 것이 문제지만 앞으로는 사회가 변할 것이고 지금까지의 중간 결산일 뿐 이고 앞으로의 인생은 길고 세계는 넓고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과 노력은 다양하기 때문에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뚝심과 마음의 품이 넓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