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1월 1일, 연합군 사령부의 요구에 따라 히로히토 일왕은 연두교서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나와 우리 국민 간의 유대는 상호 신뢰와 경애로 맺어진 것이지 단순히 신화와 전설에 의한 것은 아니다. 천황은 신[現御神]이고, 일본 국민은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며 그래서 세계를 지배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가공의 관념에 기반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일본 왕의 신격을 부인하는 소위 '인간선언'이다.
다만 이때 신이 아니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살아 있는 신을 가리킬 때 통상 쓰는 아라히토카미(現人神)라는 말 대신 아키쓰미카미(現御神)라는 말을 씀으로써 일왕의 신성을 계속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교묘하게 남겨두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런 구차한 해석에 연연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예전의 절대적 위엄이 사라졌다는 증거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일본 국민들에게 그들이 신으로 떠받들던 일왕이 어쩔 수 없는 일개 인간이라는 점을 각인시킨 것은 1945년 9월에 맥아더 장군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주일 미국대사관에서 찍은 이 사진에서 맥아더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오만한 자세로 서 있고, 그 옆의 히로히토는 마치 잘못을 저질러서 야단맞는 초등학생처럼 잔뜩 긴장한 자세로 서 있다. 당시 일본인들은 이 사진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이제 또 다른 사진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키히토 일왕에게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데, 마치 초등학생이 선생님한테 인사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렇게 절 한번 한다고 일왕이 다시 인간에서 신으로 승격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미국 대통령이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