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에는 빈대도 초가삼간도 찾기 어렵다. 대신 '모기 잡으려다 아파트 날리고 사람 잡겠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무슨 얘기일까.

지난달 2일 새벽 1시 30분, 서울 마포구의 아파트.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불꽃과 연기가 솟아올랐다. 잠자고 있던 A(38)씨는 그 소리에 깨 거실로 뛰쳐나왔다. 전날 밤 모기 때문에 꽂아놓은 전기 훈증기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불이 커지기 전에 잡아 큰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A씨가 잠에서 깨지 못했더라면 화마(火魔)가 걷잡을 수 없이 번졌을 수도 있다. A씨 사례는 요즘처럼 난방이 잘 되는 시대에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전기 훈증기 살충기의 액체 용기 심지가 불타고 있다.(왼쪽) 살충 용액은 석유류여서 인화성이 있다. 오른쪽 사진은 심지를 타고 들어간 불이 살충 용액에 붙어 외부 케이스까지 모두 불에 탄 모습이다.

한겨울에도 실내 온도가 섭씨 30도에 육박할 정도이니 모기가 사계절 내내 기승을 부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뿌리는 스프레이 형태 모기약이나 모기향, 모기장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돼 버렸다. 대신 무색·무취·무향에 콘센트에 꽂기만 하면 모기가 얼씬거리지도 못하는 '전기 훈증 살충기'가 대세가 됐다. 3세대 모기약으로도 불리는 전기 훈증 살충기는 지속 일수가 30일에서 100일로 늘어나는 등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안방을 비롯, 아기방이나 거실 등 방 곳곳에 하나쯤은 둬야 할 생활필수품처럼 됐다. 그런데 전기 훈증 살충기는 모기 퇴치의 궁극적인 제품일까.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을까. 마포소방서 대응관리과는 최근 실험을 했다.

액체 전자 모기향으로 불리는 전기 훈증 살충기에 대한 발열체 온도 실험과 연소 실험이다. 발열체는 전기가 공급되면 가열되면서 살충 용액을 날려보내는 기능을 한다. 실내 온도를 높여보니 발열체 온도도 급격히 올라갔다.

한여름 또는 겨울에도 실내 온도를 지나치게 높이면 발열체가 폭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사기로 발열체 내부에 소금물을 뿌렸더니 불꽃이 발생해 바닥에 불이 붙기도 했다.

마포소방서는 합선 같은 요인도 훈증 살충기의 발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살충 용액의 주성분도 석유류에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 등을 섞은 것으로 심지를 통해 유출되면 피부발진과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있다.

살충 용액은 인화성 액체다. 하지만 이 같은 제품 위험성은 훈증기 안쪽에 부착된 작은 스티커에 조그맣게 표시돼 있어 일반 소비자들은 알아채기도 어렵다. 살충제 용기를 끼워넣으면 그나마도 전혀 볼 수 없게 되는 구조다.

식약청은 '인화성 물질을 근처에 두지 말 것' '밀폐된 방에 두고 환기를 안 하면 천식이나 두통 우려가 있음' '이불이나 옷으로 덮지 말 것' '어린이 손에 닿지 않도록 할 것' 등 전기 훈증 살충기 사용법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전혀 모르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