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공개석상에서 '싱가포르의 이중 언어 정책 교육은 실패작'이었다고 인정했다. (본지 11월 20일자 보도)

미안하다(I am sorry)는 영어가 싱가포르에서는 'Sorry lah'다. lah는 '하네요'란 뜻의 중국어다. 만일 싱가포르에서 동의(同意)를 구하는 is it?을 쓰면 사람들의 눈초리가 올라간다. 비꼬는 투로 들리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선 Yes도 Yar로 둔갑한다. 의문문에선 ka?가 사용되는데 이 말의 어원(語源)은 중국어의 了다. r이 l로 발음돼 very→vely, already→oreddy로 바뀐다. 이런 것들이 싱가포르식 영어, 즉 '싱글리시'의 전형이다.

일러스트=김현국 기자 kal9080@chosun.com

싱가포르만 그런 건 아니다. 중국식 영어를 '칭글리시'라고 하는데 작별할 때 쓰는 good-bye가 baibai로 바뀌는가 하면 대도시 곳곳의 주유소(gas station)는 오일 게이트(oil gate)라는 국적 불명의 영어로 대체됐다.

인도식 '힝글리시'는 한술 더 뜬다. 연기하다(postpone)의 반대말이 영어사전엔 없는 prepone이다. airdash(갑작스러운 비행기 이동), eve-teasing(성추행) 등도 인도인이 아니면 알아듣기 힘들다.

처거(chugger)는 채리티(charity)와 머거(mugger)의 합성어로 거리에서 자선금을 모금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록업(rock up)은 도착, 후버(hoover)는 재빨리 먹는 동작, 루비 머리(ruby murray)는 카레의 속어다.

일본인들도 이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를 파소콘(pasocon)이라 한다. 워낙 정통 영어와 거리가 멀어 일본식 영어에는 재플리시 , 쟁글리시(Janglish)라는 말까지 붙었다.

이 현상은 이중(二重) 언어를 사용해서 생긴다. 더구나 싱가포르처럼 다인종·다언어·다문화로 구성된 나라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 전 세계적으로 이중 언어를 쓰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CIA에 따르면 영어가 제1언어인 나라는 20개국이다. 제1언어 혹은 공용어(38), 공용어(14), 제2언어(47), 제3언어(6개국) 등으로 나뉜다. 영어를 범국가적으로 사용하는 나라(125개국)는 전 세계 국가 수(243개)의 절반이 넘는다.

그렇다면 이중 언어 정책을 금해야 할까? 주(駐)싱가포르 대사관 박유동 서기관은 "리 전 총리의 발언은 이중 언어 정책의 문제가 아니고 영어에 중국어가 가미된 싱글리시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영어 올바르게 쓰기 운동에도 불구하고 싱글리시가 바이러스처럼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자유롭게 쓰이고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물론 이런 게 싱가포르만의 문제는 아니다. 타글리시(필리핀 타갈로그어+영어), 힝글리시(힌두어+영어), 칭글리시(중국어+영어), 콩글리시(한국어+영어)처럼 변형 언어가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이중 언어 정책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교사와 학생들을 상대로 연설하면서 "학생들이 최소한 2개 언어는 구사해야 한다"며 '외국어 교육 강화 비상 대책'을 주문했다. 아프리카 각국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