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이 있어서 강남의 한 식당에 갔다가 메뉴판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4만5000원으로 적힌 한우 등심 1인분의 양이 겨우 120g에 불과한 것 아닌가. 180g에서 150g으로 은근슬쩍 줄어든 것이 엊그제 같은데 급기야 수퍼모델에게나 어울릴 120g에 이른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한우 1인분에 '초경량 100g 시대'가 열리는 건 이제 시간문제로 보인다.
등심 몇 점씩 먹고 네 명이 지불한 저녁 식사 값은 무려 30만원. 베트남 큰 소 한 마리의 현지 가격이 우리 돈으로 약 40만원, 중국 소는 약 60만원에 거래된다고 하니 금액으로만 따지자면 이날 한 끼 식사로 중국 소 반 마리를 잡아먹은 셈이다.
작년에 촛불사태까지 겪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었을 때 내심 이제는 값싼 수입 쇠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한우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수입 쇠고기 역시 가격이 만만찮다. 왜 그럴까?
한우시장은 기본적으로 수입 쇠고기의 판매량이나 가격 변화에 둔감한 특성을 보인다. 한우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히려 우리 축산 농가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막연한 두려움에 도축량을 마구 늘리게 되면 가격은 폭락하기 마련이다.
실제 서울 농협공판장에서 거래되었던 한우 가격을 살펴보면 촛불시위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 6~7월의 시세 1만3000원(지육 1kg 기준)이 바닥이었다. 올 들어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며 수요가 살아나고 축산 농가도 안정을 되찾게 되자 한우 가격은 오히려 급등세로 돌아서 1만8000원을 상회하고 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등심의 경우 1등급(거세우) 기준 도매가격이 kg당 6만원을, 소매가격은 7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 재개되면 우리 축산 농가가 다 망한다'고 작년 촛불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들이 주장했지만 결국 피해를 본 쪽은 이들의 현란한 구호에 현혹되어 당시 싼값에 소를 마구 처분한 축산 농가들이었다. 광우병에 대한 과장된 그리고 그릇된 정보가 큰 영향을 미친 곳은 차별화된 한우시장이 아니라, 호주산이 지배적 사업자로 자리 잡고 있는 수입 쇠고기 시장이다.
수입시장 점유율이 60%를 상회하는 호주산에 대항하여 미국산이 제대로 된 경쟁을 벌이지 못하는 바람에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호주 정부의 한 보고서는 미국산과 경쟁이 없었던 지난 2003년에서 2007년 동안 호주산 쇠고기의 한국 수출 가격이 62%나 상승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우는 아예 접어두고 수입 쇠고기라도 한번 실컷 먹어 보았으면 하고 바랐던 서민들의 기대는 당분간 물 건너갔다. 하지만 한우의 미래를 위협하는 위험 요인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한국은 광우병에 관한 한 국제적으로 '미결정국(undetermined)'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에 광우병이 있는지 없는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내년 5월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은 '광우병 통제국(controlled)' 지위 확보를 목표로 현재 노력 중이다. 하지만 광우병은 언제 어디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만에 하나 광우병 소가 한 마리라도 발견된다면 우리의 축산 농가는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될 운명이다.
따라서 철저한 광우병 통제시스템의 가동이 당장 필요하다. 아울러 '만약 최악의 경우가 발생해도 한우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내용을 입증할 만한 정부의 정확한 정보 제공과 이를 기초로 한 적극적인 홍보가 절실하다. 미국과 우리 정부 그리고 국민들을 향해 마구 쏘아 올린 일부 시민단체들의 저주와 선동의 '광우병 독화살'이 언젠가 우리 축산 농가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나 않을까 두렵다.
입력 2009.11.24. 22:11업데이트 2009.11.2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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