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와! 빨리 와!"
서울 한강시민공원 광나루지구 자전거공원 내 '레일바이크(rail-bike)' 입구.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이들이 응원하듯 연호(連呼)했다.
체험 종료시각(오후 5시)이 5분밖에 남지 않았으니 페달을 빨리 밟아 돌아오란 얘기였다. 구불구불 놓인 레일 위를 9대의 자전거형 카트(cart)가 달리도록 꾸민 레일바이크는 지난 9월 자전거공원이 생기자마자 명물이 됐다.
강원도 정선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던 레일바이크를 타려고 연인, 가족들이 몰렸다. 이 레일바이크가 최근 소송을 당했다. 패소하면 운영을 중단해야한다. 광나루 자전거공원이 문 연지 두달밖에 안됐는데 무슨 일일까.
어떤 지형에도 레일을 까는 기술을 특허 낸 A사에 작년 8월 전화가 왔다. 서울시의 광나루 자전거공원 설계를 맡았다는 B사였다. 이 회사는 "자전거공원에 레일바이크를 설치하려 하니 도면과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사업인데 설마 특허권을 침해할까….' 마음을 놓은 A사는 특허등록증 사본과 함께 도면의 이미지 파일 등을 보내줬다. 두 달 후 B사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 잘 되면 서울시의 다른 공사에도 참여할 수 있을 거라며 레일바이크 시방서(示方書)를 요구했다. 시방서는 레일바이크 공사에 필요한 재료 종류와 시공방법 등 상세한 내용을 담은 자료다.
시방서를 건네준 A사는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도 레일바이크 제안서를 보냈다. 올해 3월에는 한강사업본부에 한강 범람시 대책 등 조언도 해줬다. 670m에서 552m로 레일 구간이 줄었으니 견적을 다시 내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정식 계약 통보를 손꼽아 기다리던 A사는 지난 8월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작년 말 서울시로부터 광나루 자전거공원 공사를 따낸 시공사가 레일바이크 공사 계약을 다른 회사와 한 것이었다.
A사 직원이 자전거공원 인근을 지나다 우연히 레일바이크 현장을 발견했다. A사가 준 시방서와 도면 자료대로 레일이 깔려 있었다. 사각형 파이프 침목과 지지대 파이프 등 핵심 구성물 규격도 같았다.
이용만 당했다는 사실을 처음 문의전화를 받은 1년 뒤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A사 특허의 핵심은 땅을 평평하게 고르는 작업 없이도 레일을 깔 수 있는 방식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지주(支柱) 역할을 하는 파이프를 땅에 박은 뒤 그 위에 침목을 까는 방식이어서 굴곡이 심한 지형에도 손쉽게 레일을 깔 수 있다. 도로 위에 기둥을 세우고 모노레일을 설치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A사는 "레일만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많지만 알고 보면 수십억원의 돈과 시간을 들인 것으로 미국·일본·유럽에 특허출원 중인 기술"이라고 말했다. A사는 서울시·시공사·설계사를 상대로 특허권 침해 소송을 냈다.
A사는 "지방자치단체 사업이라 믿었는데 오히려 뒤통수를 맞고 특허를 절취당했다"며 공동피고인 서울시·시공사·설계사가 연대해 1억원을 손해배상하라고 청구했다. 서울시는 특허 침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가 개입해 특허 침해를 도모했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며 "특허라지만 다른 회사에선 흔한 레일 방식이며 베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최초의 레일바이크는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