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얼마 전 딸아이가 물었다. 첫 여성 통계청장이 임명됐다는 소식이 실린 신문을 내 눈앞에 흔들어대면서 말이다. 동그란 얼굴이 꽃 같다.
"아니, 아닐걸. 너는 엄마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확실해." 간만에 모녀가 한참 수다를 떨고 나서 돌아앉으니 문득 궁금해졌다. '난 우리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50대 중반의 나이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치곤 좀 민망했다. 내 인생과 어머니의 인생을 포개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자식을 키우고 나이가 들면 으레 어머니처럼 되겠거니, 하고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질문에 대한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확신이 없었다.
걸출한 성공이나 사회적인 명성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처럼 한 편의 완결된 삶을 살 자신이 없다. 어머니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인생의 나머지 절반이 다 가기 전에 '인생의 출구 전략'에 성공했다. 그런데 나는 이제 막 절반을 지났을 뿐, 앞은 아직 깜깜하다. 벼랑엔 바람이 분다.
어머니는 '찬란한 황혼'을 보내고 있다. 아버지와 단둘이 독립해서 자식들 도움도 안 받고 생활을 꾸려간다. 명절에 용돈이라도 드릴라치면 "네 애들이나 챙겨라"하며 물리치시니, 요즘 그런 부모가 어디 흔한가. 식사 때마다 아버지 밥그릇에 맛난 반찬을 슬그머니 올려놓는, 좀처럼 식지 않는 금실만 봐도 그렇다. 정말 부럽다.
어머니는 사업가의 딸로 태어나 명문 여고를 졸업했다. 인텔리 여성이었다. 결혼 후 어머니의 삶은 갑자기 굴곡이 졌다. 가난으로 생활고를 겪으면서 몸 곳곳에 병이 생기기 시작했고, 내가 초등학교 시절, 마침내 쓰러지셨다. 쓰러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크게 부딪쳐 한동안 기억이 가물가물하셨다. 물건을 깜빡 놓고 다니거나, 사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신기한 것은, 그런 와중에도 집안 살림하는 방법만큼은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4개의 도시락을 싸서 딸 둘 아들 둘에게 제각각 보자기를 씌워서 나눠주는데, 항상 정확했다. 아버지의 러닝셔츠는 3번 각지게 접어서 서랍에 넣었으며, 설거지가 끝난 접시는 늘 그렇듯 햇빛이 스미는 부엌 쪽창을 향해 줄지어 놓여 있었다. 그때 반사광으로 유난히 반짝이던 시렁 위 접시들이 눈에 선하다.
이후 한동안 고생하던 어머니는 조금씩 건망증에서 벗어났다. 어리석은 딸자식의 일방적인 추측일까. 가족을 위한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 어머니의 기억을 되돌려놓은 것 같았다.
어머니는 '마법의 맷돌'이었다. 어머니 품에서 밥이 나오고, 사탕이 나오고, 용돈이 나왔다. 빠듯한 살림에도 4명 중 3명을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아들 딸 하나씩 둔 나는 온 힘을 다해야 어머니의 절반이나마 겨우 따라갈 수 있으리라.
그러나 돈 문제에 대해선 단호하셨다. 내가 대학 졸업하고 유학을 떠날 때, 유학자금이 필요하다고 어머니를 졸랐다. 어머니는 "한 가지만 약속하라"고 하셨다. 내 결혼 자금을 앞당겨서 줄 터이니, 나중에 결혼할 때 원망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냉큼 "걱정 마세요"라고 대답하고 유학을 떠났다. 훗날 내 결혼식에서 어머니가 당시의 '약속'을 굳게 지키실 줄은 몰랐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엔 "찬바람, 섭섭…."
어머니는 부모 자식 간에도 맺을 것과 끊을 것을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인색하지 않았지만, 자식들 버릇이 나빠지도록 모든 것을 탈탈 털어서 주지도 않으셨다. 덕분에 우리 4남매는 이제까지 큰 다툼 한 번 없이 우애롭게 살고 있다. 아버지도 어머니 덕분에 자유롭고 평온한 노년을 보내고 계시다.
나도 어머니처럼 은퇴할 수 있을까.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 이상을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한편으론 '앞으로 자식들에게 신세 지지 말고 살아야지'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와 나의 동년배 세대의 '출구 전략'은 쉽지 않아 보인다.
청년들이 사회에 나오자마자 치열한 취업 전선에서 줄줄이 미끄러지고 있다. 부모가 대학 나온 자식들을 챙겨줘야 하는 시간의 길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부모 입장에선 그만큼 은퇴가 늦어야 함에도, 이미 40세 50세부터 직장에서 눈치가 보인다.
기대수명이 곧 100세를 넘는다고 한다. 자식이 취업을 못하면 부모에게 짐이 되고, 부모가 오래 살면 자식에게 짐이 되는 세상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내 자식, 손주들은 어떨까. 그들은 아마도 120세, 150세를 대비하는 세상에 살 것이다. 그때, 내 자식들은 나의 어머니가 살았던 삶을 살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어느 가을날. 어머니는 진심인지, 허풍인지 모를 당신의 구상을 나에게 털어놓으셨다. "내가 앞으로 10년만 살게 된다면, 남은 재산을 10분의 1로 나누어 펑펑 쓰고 죽겠노라"고. 어머니의 구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대신 10여년 전 동네 시장에서 몇 백원인가를 주고 산 오렌지색 스카프를 소중한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너무 밝지도, 너무 칙칙하지도 않은 빛깔이 쏙 맘에 든다"면서. 나도, 우리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