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개봉할 영화 '어떤 방문'은 전주국제영화제가 제작한 옴니버스 작품이다. 홍상수와 가와세 나오미(일본), 라브 디아즈(필리핀) 세 감독이 같은 주제를 받아 각각 짧은 영화를 한 편씩 만들었다. 영화는 가와세 나오미의 '코마', 홍상수 '첩첩산중', 라브 디아즈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 순으로 상영된다.

세 감독에게 주어진 주제는 '우연한 만남과 필연적 사건'. 이 프로젝트가 어쩐지 홍상수 감독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홍상수 영화에서는 늘 남녀가 우연히 만나고 섹스에 필연적으로 매달리지 않는가. 어찌 됐든 세 작품 중에 '첩첩산중'을 볼 때 가장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첩첩산중’에서 미숙(왼쪽)은 옛 애인과 자신의 친구가 사귀는 모습에 화가 나다른 옛 애인 명우를 불러낸다.

친구를 만나러 전주에 간 미숙(정유미)은 그곳에 사는 옛 애인 전 선생(문성근)을 불러내 만난다. 이후 그녀는 친구와 전 선생이 몸을 섞는 사이임을 알게 된다. 홧김에 그녀는 또 다른 옛 남자 친구 명우(이선균)를 전주로 부른다.

홍상수 영화는 불쾌할 만큼 사실적이며, 킬킬거릴 때 얼굴을 달아오르게 한다. 이 단편에서도 홍상수가 그린 인물들은 뻔뻔하고 즉물적이며 욕지기 날 만큼 가증스럽다. 카메라는 여지없이 그런 인물들의 멍청하고 단순한 모습까지 보여주며 낱낱이 까발린다. 배우들이 모두 호연했다. 사실 홍상수 영화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은 호연한다. 그들은 내면 연기 한번 없이 내면을 보여주는 신통력을 발휘한다.

일본 영화 '코마'는 할아버지 유언에 따라 '코마'라는 마을을 찾은 한 남자와 그곳에서 만난 여인의 이야기. 느닷없는 스토리와 불친절한 연출을 좋아하는 관객을 위한 영화다. 필리핀 영화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는 어릴 적 살던 필리핀 동네를 찾은 캐나다 여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 화질이 너무 나쁘다는 것 외엔 별 감흥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