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개념미술의 대표 작가로 부상하고 있는 마틴 크리드. 국내 첫 개인전을 위해 방한한 그는“내 작품들은 소우주를 의미한다”고말했다.

영국의 개념미술 작가 마틴 크리드(Martin Creed·41)의 국내 첫 개인전이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크리드는 2001년 권위 있는 영국 터너상(賞)을 수상한 이후 주목받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혀왔다. 서울 전시에선 설치를 비롯해 조각·네온·드로잉·영상 등 그동안 보여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번호 160:The lights going on and off〉는 말 그대로 불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불이 켜지고 꺼짐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와 '-'를 의미한다. '+'는 보이는 세계, '-'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뜻한다. 두 사람이 있을 때 사람의 존재는 확인할 수 있지만, 둘의 관계는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이렇듯 크리드는 작품을 통해 소우주를 상징한다. 키가 낮은 것부터 순서대로 놓는 선인장 화분(작품번호 960)이나 키 순서대로 배치한 종이상자도 가족이나 소우주를 상징하고 있다. 영상작품에서 작은 강아지 뒤로 점차 큰 개가 나타나는 것도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다. 크리드의 다른 전시에서는 전시장 밖에 키 순서대로 심긴 나무로 표현됐다.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것은 움직임과 휴지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음악의 리듬으로 이어진다. 크리드는 눈에 보이는 음악과 리듬을 표현하기 위해 악보에 음을 그려넣고 연주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사람들이 구토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 작품(작품번호 837)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방한한 크리드는 인터뷰를 통해 "구토는 인간이 자신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초상(肖像)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크리드는 영상 작업을 위해 친구들을 불러모아 실컷 마시고 먹게 한 다음 스튜디오에서 구토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작가는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사람이 직접 전시장에서 달리는 〈작품번호 850〉을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 삶의 근본이 인간의 움직임이라는 점에 착안해 힘껏 달리는 모습을 통해 움직임의 극대화를 나타낸 것이었다.

크리드의 작품에는 번호가 붙는다. 구체적인 제목을 붙이면 의미의 한계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예를 들어 회화가 가장 중요하고 전부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위험을 분산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7일부터 내년 2월 12일까지 열린다. 관람료 학생 1500원, 일반 3000원. (02)733-8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