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추위'가 급습한 지난 2일 오후 8시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KT 본사 앞 먹자골목. 횟집과 고깃집, 이탈리안 레스토랑 등 음식점과 주택이 즐비한 이곳의 3층짜리 한 건물 지하에서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연주하는 악기소리가 얇게 흘러나왔다.

125㎡(38평)의 지하 공간에 모여 앉은 중년 남녀 13명의 입엔 색소폰 10개, 클라리넷 3개가 물려 있었다. 이어진 연습곡은 나훈아의 '고향역'.

"짜잔 짜짜짠 짜자자자…. 노래 앞부분이 김지애의 '얄미운 사람'이랑 비슷해요. 우리 중년 분들은 그냥 악보만 보면 힘드니까 어려운 부분은 비슷한 박자를 연상하면서 연습하면 도움이 됩니다. 자, 다시 한번 갈게요."

지휘자 김영중씨가 연습실 앞쪽에 놓인 컴퓨터로 다가가 마우스를 누르자 전기기타와 드럼 소리가 어우러진 반주음악이 깔렸다. 30대부터 60대 중반의 연주자들은 가끔씩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신의 음색을 의심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1시간 30분 동안 악기를 불었다.

지난 2일 저녁 성남 정자동 연습실에 모인‘연주나라 네트워크 패밀리’의 지휘자 김영중씨(오른쪽 맨 위)와 회원들. (앞줄 왼쪽부터) 이조옥·박정희·김학구씨는 클라리넷을 즐기고 있다. (가운데 줄 왼쪽부터) 정태선·이종수·김병원·이해문씨는 알토 퍼스트 색소폰을, (맨 뒷줄 왼쪽부터) 여영애·이옥기씨는 알토 세컨드 색소폰을, 백상근·이석빈·김형대·조석현씨는 테너 색소폰을 연습한다.

분당·광주·이천서 패밀리 구축

매주 월요일 저녁에 이곳에 모여드는 이들은 색소폰 동호회인 '연주나라 네트워크 패밀리'(이하 '연주나라') 회원들이다. '네트워크'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지역별로 같은 이름의 동호회가 구성돼 활동하기 때문이다.

'연주나라'는 지난 2007년 3월 결성돼 성남 중원구 금광동의 한 교회를 빌려 연습을 시작했다. 음악을 전공한 김씨가 색소폰에 관심 있는 주변 사람들을 모아 40여명으로 출발했다. 이어 분당 정자동으로 연습실을 옮겼고, 성남 복정동과 이천, 광주, 서울 강남구 도곡동과 강동구 천호동 등 서울과 경기 동남부권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 연습실을 마련하고 회원들을 모았다. '패밀리'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9개 지역에 14개팀이 구성돼 300명 정도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죠. 1년 정도 기본기를 닦았고, 올해 초부터 각종 지역행사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2007년 구성된 이천 패밀리의 경우 이천 가을거리 문학축제, 고려대학 신우회 초청연주, 세계도자비엔날레 광주 개막식 연주, 찾아가는 음악회 등 지역 안팎을 넘나들며 활동한다. 지난달 열린 이천쌀문화축제에서도 축하공연을 했다.

같은 '연주나라' 식구라도 '패밀리'마다 연습과 활동 방식은 다르다. 광주 패밀리가 개인 연습을 위주로 연습실을 사용한다면, 분당 패밀리는 합주 위주 연습을 하는 식이다. 또 지역 행사더라도 다른 지역 '패밀리' 회원 중 참가 가능한 사람은 언제든 합류 가능하고, 직장이나 주거지에 따라 회원가입도 자유롭다. 단순히 '지부'로만 활동하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로 불리는 이유이다.

"색소폰은 중년을 위한 악기"

회사원, 교사, 주부 등 회원 면면도 다양하다. 모두 김영중씨가 '백아들(백프로 아마추어들)'이라 부르는 순수 아마추어들이다.

분당 정자동 패밀리 반장을 맡은 김병원씨는 한 중소기업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다. 매주 월요일 회사일이 끝나면 20~30분을 자가용을 몰고 광주시 오포읍 집에서 분당으로 건너온다. 김씨는 "나이가 들면 위축되고 남들에게 박수받을 기회가 많지 않은데, 색소폰을 물고 무대에서 박수받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며 "복식호흡으로 건강에도 좋고 정서적으로 위안을 주는 색소폰은 중년을 위한 악기"라고 했다.

개인사업을 하면서 2년 전 시흥시의 한 색소폰 동호회에서 악기를 처음 잡은 백상근(개인사업)씨는 "'연주나라'는 인터넷 카페에서만 활동하다 시흥에서 가락동으로 이사온 뒤 오프라인 활동을 한 지 3~4개월째"라고 했다. '연주나라' 인터넷 카페는 김영중씨가 직접 편집한 악보나 행사 소식 등을 올리는 곳이다.

오는 14일, '연주나라' 패밀리들은 이천에서 '토요 번개뮤직캠프'를 연다. 각지의 회원들이 한데 모여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강원도 아리랑, 베사메무초 등을 집중 연습할 계획이다. 여름에는 2박3일 동안 합숙하며 실력을 늘리고 화합을 다지는 시간도 가졌다.

김씨는 "살면서 일·운동·악기 이 3가지는 반드시 해야하는데, 그중 악기는 정서적 여유가 있거나 정서적 여유를 찾고 싶은 분들이라면 꼭 배워야 한다"며 "'연주나라'의 네트워크는 언제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