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식인들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대해서 찬·반이 팽팽하다. 이를 적극 옹호하는 뉴욕타임스 명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는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나 시종일관 '삐딱한' 시각을 견지하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이라는 날개까지 달게 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정치경제학적 입장에서 경고를 날렸다. 《세계화와 그 불만》으로 경종을 울렸던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를 통해 세계화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를 아프게 파헤쳤다.
미시간주립대 지리학 교수인 하름 데 블레이의 《공간의 힘》(원제 The Power of Place)도 비슷한 맥락에 서 있다. 지리학자로서 그는 "지구는 문화적으로는 물론이고 물리적으로도 아직 울퉁불퉁한 땅이며, 그 지역적 구획은 결정적인 방식으로, 여전히 수많은 이들을 불편을 주는 환경 속에 속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공간(또는 장소)의 힘과 인간의 운명은 물리적 지역과 자연환경에서 문화와 지역전통에 이르기까지 많은 면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진 발생 시간부터 활화산의 폭발주기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맹공격을 예상하는 것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과학의 몫이다. "베수비오 산에서 메라피 산에 이르기까지, 그 파괴력이 때로 역사의 흐름 자체를 바꾸어 놓았던 자연의 위험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저자는 아무리 이동의 시대가 왔다고 해도 "자기가 태어난 나라 바깥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2억에 불과하며 세계 인구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지구호(號)에 승선한 70억 탑승객 중 절대다수는, 대규모 이주라는 신화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태어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오두막집에서 생을 마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주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위험이 얼마나 자명하건, 혹은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하건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러한 지역에 모여 살며, 가장 무서운 위협이 닥쳐와야 그때야 집을 버린다"는 것이다.
저자는 맹목적인 세계화가 초래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유럽·북아메리카·동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 같은 '세계 중심부'는 지구촌 인구의 15%에 불과하지만 세계 소득의 75%를 차지한다. 주변부에는 세계 인구의 85%가 살지만, 세계 총소득의 25%만이 돌아간다. 또한 "세계 절반의 도시 인구는 나머지 절반의 시골 인구가 소비하는 것의 10배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이런 경제적 편차 심화의 부작용은 상상 이상이다. 가령 질병 문제가 그렇다. 지구 온난화가 초래한 모기의 창궐 때문에 뎅기열은 세계 주변부, 특히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저위도 지역에 있는 100개 이상의 국가들이 뎅기열의 영향권 안에 있으며, 25억의 인구가 위험에 처해 있다. WHO의 보고에 따르면, 뎅기열에 걸리는 인구가 해마다 5000만명에 달하고 그중 대다수는 아동이며, 감염자들 중 50만명이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심각한 수준이다.
이외에도 '세계가 결코 평평하지 않고 평평할 수도 없다'는 증거는 400쪽에 이르는 책 곳곳에서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만일 미국의 고도로 도시화된 사회의 소비양상이 세계적인 것이 된다면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4개의 지구가 더 필요하다." 프리드먼에 매혹됐던 시각을 균형 잡기 위해 일독을 권한다. 그러나 "세계의 수렴 과정이 정체에 의해 저지되고 있으며 심지어 퇴보하고 있다" 등 원문의 의미를 채 소화하지 못한 직역(直譯)이 종종 몰입을 방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