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20년전 게임도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공식 기록지 한장만 보면 그날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기록은 프로야구 역사를 담은 '실록'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기록은 누가 하는 것일까. KBO는 야구 전문 기록원을 양성하고, 이들이 현장에서 전 경기를 기록으로 남긴다.



플레이오프 4차전이 열린 11일 잠실구장 기록원실은 경기전부터 분주했다. 2명의 기록원과 1명의 대기 기록원이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야구장에 도착해 준비를 했다. 컴퓨터 전송 시스템을 점검하고, 기상청 날씨 예보를 뽑아보는 등 준비 상황을 체크했다.







화장실 안 가려 '음료수도 금물'
5회까지 꼼짝 안해…이닝 끝나면 투구수 등 비교

정확한 기록위해 주심과 수시로 수신호 주고받아

 ▶경기전이 더 바쁜 기록실

이날 경기엔 김상영 기록위원과 김제원 1군 팀장이 배치됐다. 둘다 19년, 18년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김상영 위원이 수기 기록, 김제원 팀장이 컴퓨터 기록을 맡았다. 수기한 기록지는 경기 후 구단은 물론 각 언론매체에 전달된다. 또 한국프로야구의 역사책인 KBO 연감에 수록된다. 컴퓨터로 작성되는 기록 역시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돼 KBO 기록실에 저장된다. 여기서 또 한가지. 컴퓨터에 저장되는 기록은 실시간으로 KBO와 계약한 포탈업체에 전달돼 실시간 문자 중계로 팬들에게 서비스 된다. 팬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포스트시즌인만큼 가장 먼저 컴퓨터시스템을 점검했다. 김 팀장은 "TV 중계도 많이 보지만 문자 중계를 보는 팬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 해외에서도 문자를 본다고 하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경기시간이 다가오자 김 팀장은 기상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잠실구장 인근의 날씨를 체크한다. 김 팀장은 "날씨도 기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무슨 의미냐고 되묻자 "지난 플레이오프 1차전이 좋은 예다. 인천 문학구장에 강풍이 예보됐고, 경기중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이럴땐 수비수 입장에서 많이 고려해 준다. 정상적인 날씨라면 실책을 줄 수 있는 수비라도 바람의 영향 때문이라면 실책보다는 안타쪽으로 기록을 한다"며 "날씨가 좋지 않으면 우리도 이래저래 피곤하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이날 일기예보는 맑음이었다.

▶경기 시작되자 절간 모드

그라운드는 만원 관중들의 응원으로 떠나갈 듯 했다. 하지만 기록실 내부는 경기 시작과 함께 조용해졌다. 심지어 중계를 보기 위해 켜 놓은 TV 볼륨도 가장 낮게 설정됐다. 그만큼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1회말 두산의 김현수가 친 타구를 SK 좌익수 박재상이 라인 근처에서 잡았다. 김 위원이 문승훈 주심을 '췻췻'하며 불렀다. 그러자 문 주심은 팔을 바깥쪽으로 휘저었다. 파울이라는 뜻이었다. 정확한 기록을 위해 다시 한번 체크한 것이다. 참고로 그라운드 내 플라이볼은 'F', 파울 플라이볼은 'f'로 기록지에 표시된다.

이닝이 끝나자 두 기록원은 쉴 틈도 없다. 곧바로 투구수를 서로 비교했다. 두 사람이 확인한 결과가 일치하면 넘어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처음부터 하나씩 체크해야 한다. 이 작업이 끝나자 수비수들의 위치를 파악한다. 또 전광판에 표시된 선두 타자가 맞는지도 확인한다. 김 위원은 "이닝이 끝나면 더 바쁘다. 우리도 심판과 마찬가지로 5회 클리닝 타임까지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물도 많이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2회초 SK 공격 1사 3루가 되자 두산 수비수들이 전진 수비를 펼친다. 이 부분도 기록원들은 체크해 둔다. 수비 시프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 있는 강습타구를 대비해서다. 만약 이 상황에서 내야수가 글러브에 맞고 떨어뜨려도 실책이 아닌 안타로 처리해 준다고 했다.

두산 선발 김선우가 초반부터 흔들리자 윤석환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간다. 주심이 기록원들에게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인다. 한 경기서 코칭스태프가 투수 교체없이 마운드에 올라갈 수 있는 횟수를 2번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이를 표시해 두기 위한 것. 심판들이 기억하고 있기 힘들어서다.

3회 두산 고영민의 동점 스리런 홈런으로 승부가 팽팽해지자 기록실 분위기는 더욱 절간 모드로 변했다. 갑자기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혹시 졸리지 않냐고 물어봤다. 김 위원은 "일에 집중하다보면 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포스트시즌처럼 중요한 경기선 더욱 긴장한다"면서도 "혹시 졸리면 껌을 씹거나 옆 기록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졸음을 쫓는다"고 살짝 알려줬다.

< 잠실=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