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반. 극도의 피곤함 때문인지 정신은 또렷하나 무중력상태에 놓인 듯 알람을 끄려는 손이 흐느적거린다. 오늘까지 내야 하는 실험보고서를 위해 새벽 5시까지 깨어있던 것은 기억난다. 도대체 언제 잠이 들었던 것일까. 조금 더 책상 앞에서 흐느적거리고 싶지만, 오늘의 일정을 생각하면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9시 25분에 시작하는 생화학 수업은 예습을 하지 않고서는 이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며 교수님이 미리 올려둔 노트를 읽다 보면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수업은 보통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으로, 그리 길지 않지만, 그 짧은 수업들이 두 세 개씩 붙어있는 경우도 있다. 그 좋은 예로 11시 25분부터 1시 25분까지 생리학과 물리화학 수업이 사이 좋게 붙어있다. 하루에 수업 세 개. 여기까진 그럭저럭 괜찮다. 하지만 배움의 즐거움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물리화학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있는, 생화학이나 화학이 전공인 학생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분석화학 실험이 바로 그 즐거움이다.
1시 반부터 시작되는 분석화학 실험은 4시간짜리 실험으로 5시 반까지 계속된다. 끼니를 거르는 경우도 태반이다. 실험실에 도착하면 모두들 실험실에 들어가기 적합한 복장, 즉 실험복과 보안경을 착용한 상태로 오늘 해야 하는 실험의 순서를 재차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다.
분석화학 실험은 실험에 필요한 모든 용액을 학생들이 만들어야 하고, 오차가 매우 작아야 하기에 어렵기로 소문난 실험 중 하나이다. 게다가 시간도 빠듯해 4시간이 결코 긴 시간이 아닌, 오히려 짧은 시간이라 느껴진다.
4시간 동안 온 정신을 집중해 실험을 하고 나면, 온 몸이 녹초가 된다. 실험실 입구에 쓰러지듯 앉아있는 학생들이 괜히 많은 게 아니다. 아침과 점심을 걸렀음에도 불구하고 저녁을 먹을 기운조차 없다. 그저 자고 싶단 생각만 가득하다. 허나 배움의 즐거움이 아직 조금 더 남아있다. 실험 결과를 분석해 작성한 보고서를 24시간 이내로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중간고사 기간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실험을 마친 뒤 녹초가 된 상태에서 시험을 곧바로 보러 가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 최악의 상황이 나에게는 가장 공포스런 형태로 다가왔었다.
시험이 없을 경우엔 보통 탄식이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친구들과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미분이나 적분도 아닌 간단한 사칙연산만으로도 실험결과를 분석할 수 있지만, 그게 또 그리 쉽지가 않다. 지금 내가 한 계산이 맞는 지, 틀리는 지 모르기에 서로의 결과를 비교해보며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맥길 대학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이런 일상의 반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