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푸른 눈의 남녀 8명이 이화여대를 찾았다. 학교 설립자인 메리 F 스크랜튼(1834~1909) 여사의 100주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 방한한 후손들이다.

스크랜튼 여사는 51세이던 1885년 한국에 건너와 이화학당과 국내 최초의 여성 전문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을 세운 선교사로, 8일은 그가 한국 땅에서 숨을 거둔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올 초까지 이화여대는 설립자의 후손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김영욱(43) 홍보부처장은 "선생의 아들이 딸만 4명 두었는데 남편의 성(姓)을 따랐는지 찾을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찾는 후손 하나 없는 쓸쓸한 100주기 행사가 될까 애를 태우던 지난 2월 "후손을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 코네티컷주에 사는 스크랜튼 연구가 엘렌 스완슨(Ellen Swanson·56)씨의 전화였다.

엘렌 스완슨씨가 5일 오후 이화여대 이화역사관에서 메리 F 스크랜튼 여사의 후손을 찾은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오후 이화역사관에서 만난 스완슨씨는 1997년을 떠올렸다. 한 지방대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그는 한국인 제자가 선물로 건넨 '5000년 파노라마, 한국의 역사'라는 화보집을 넘기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메리 F 스크랜튼'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코네티컷 매디슨 고향 마을엔 두 집 건너 하나꼴로 스크랜튼 성씨의 이웃들이 살았어요. 마을 도서관 이름도 '스크랜튼'이었죠."

'혹시 우리 마을 출신이 아닐까' 싶어 고향을 수소문했지만 추적이 어려웠다. 2000년 한국을 떠나 바쁜 나날을 보내던 2007년 10월, 한국에 교환학생을 갔던 한 미국 남학생이 스크랜튼에 대해 쓴 영문보고서를 마을 도서관에서 입수했다. 이후 스완슨씨는 직장도 그만두고 '스크랜튼 뿌리 찾기'에 나섰다.

시청의 가족관계 자료를 뒤지고 스크랜튼가(家) 묘지도 일일이 둘러봤다. 그러던 중 한 웹사이트(www.ancestry.com)에서 '샐리 게일(Sally Gale)'이라는 스크랜튼 여사의 4대손을 찾았다. 스완슨씨는 샐리를 통해 캐나다·영국·프랑스 등지에 살던 스크랜튼 여사의 후손들을 하나 둘 찾아냈다. 5일 이대를 찾은 8명은 이렇게 모였다.

스완슨씨는 8일 그동안의 '연구'에 대해 강연한다. 책도 쓸 계획이다. 이화여대는 지난 3월 스완슨씨 연구에 후원금 2000만원을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