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업그레드'가 한 미국인 교수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조를 영어로 짓는 법을 대학에서 강의하고, 지역사회에서 시조를 읊는가 하면 미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시조경연대회를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드라마·비보이·가요 등 한국 대중문화가 선도하고 있는 한류의 다른 갈래로 우리의 시조를 미국사회에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일본 고유의 단시(短詩)인 '하이쿠(俳句)'가 일본 문학과 역사를 알린 것처럼 시조가 한국 문학의 첨병 노릇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주인공은 하버드대 한국문학과 교수이자 한국학연구소장인 데이비드 맥캔(McCann·65) 교수. 그는 최근 자신이 영어로 쓴 창작시조집 '도시의 절간(urban temple)' 초판을 펴낸 뒤 수정작업을 하고 있다. 시조집에는 1966년 평화봉사단원으로 경북 안동농고에서 2년간 가르칠 당시 읍내에서 막걸리를 먹고 취해서 돌아올 때 돼지가 울던 기억을 담은 '안동의 어느 밤'과 '백담사', '독도', '경부선' 등 한국의 서정이 담긴 영어시조 60여수를 실었다.
맥캔 교수가 본격적으로 미국사회에 시조를 보급하기 시작한 것은 약 3년 전이다. 하버드대의 '아시아 시 쓰기' 수업시간에 일본 하이쿠, 중국 전통시에다 한국의 시조를 더해서 가르쳤다. 그는 "학생들이 시조의 마지막 연에 영어 음절을 '3·5·4·3'으로 맞춰 반전하는 대목에서 도전을 받으면서도 즐거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부터는 보스턴 지역의 시인들에게 시조를 소개해 격주로 목요일마다 모여 영어시조를 낭송하며, 우스터시에 있는 뱅크로프트 고등학교에서 시조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어 학생들에게 시조의 역사와 시조 짓는 법을 소개했다.
그는 또 시카고 지역의 한국문화보급기관인 '세종문화회'와 공동으로 지난해와 올해 미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시조경연대회를 열었다. 첫해 160명가량이 참가했던 시조경연대회는 올해 450명으로 늘었다. 올해 5월에는 서울대 권영민 교수와 함께 하버드대에서 '하버드 만해 시조 페스티벌'을 개최해 한미 양국의 시인들이 한국어와 영어로 시조를 주고받는 행사를 가졌다.
'시조의 전도사'처럼 종횡무진하는 맥캔 교수가 한국의 시조를 발견한 것은 시인 김소월을 통해서다. 그는 1973년 박사학위논문으로 소월을 연구하다가 소월의 시 세계가 한국의 전통시와 닿아있음을 깨닫고 시조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는 "소월의 '진달래꽃'은 전통시의 양식을 절묘하게 현대시로 옮겼다"며 "'나(점) 보기가(직선) 역겨워(곡선) 가실 때에는(동작)'으로 시작되는 시어는 전통음악을 넘어 마치 전통춤을 보는 것 같다"고 극찬했다.
그는 시조를 담고 있는 언어인 한글이 기능적으로 매우 효과적인 언어일 뿐만 아니라 황진이의 시에서 보듯 영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평가했다.
맥캔 교수는 예전에 미국 초등학교에서 '하이쿠 데이'가 있어 일본 문화를 이해하고 하이쿠를 짓는 시간이 있었던 것처럼 '한국 시조 데이'를 추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어려서 하이쿠를 배웠기 때문에 이후 서점에서 번역된 일본 소설을 발견해도 쉽게 책을 집어들 수 있지만, 한국은 이 연결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시조가 한국문학과 시인을 미국인들에게 친숙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영어로 인터뷰를 하던 맥캔 교수는 시조를 한 수 외워 달라는 부탁에 발음이 분명한 한국어로 황진이의 시를 마치 동네 어르신처럼 읊었다. "청산~리, 벽계수야! …."
일단 시를 읊은 뒤, 그는 기타 치는 시늉을 하며 즉석 제안을 했다. "좀 더 빠른 박자로 바꾸면 훨씬 친근감이 더해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