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가을 잔치는 정규시즌과는 또 다른 승부다. 천 근 무게로 두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과 더욱 치밀하고 예리해진 상대팀의 분석을 극복해야 한다. SK와 두산 타격의 '키 플레이어'는 좌타자인 김재현(SK·34)과 김현수(두산·21)다. 김재현은 김현수의 신일중·고 12년 선배다. 지난 2년간 두 팀의 한국시리즈 맞대결에서는 선배인 김재현이 홈런 4방을 쏘아 올리며 스타덤에 오르는 동안, 국내 최고 타자로 꼽히는 김현수는 2년 연속 방망이가 침묵을 지키면서 통한의 눈물을 머금었다. 올해도 플레이오프 승부는 두 선수의 방망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는 누가 웃을까.
■'포스트 시즌 사나이' 김재현
SK 김재현은 프로 16년째 베테랑 타자다. 올해로 7번째 포스트 시즌을 맞은 그에겐 '가을의 해결사'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신일고 졸업 후 1994년 LG 유니폼을 입자마자 팀 우승을 이끌었고, SK로 옮기고 나서 치른 2007·2008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홈런포를 때리며 팀 우승을 이끌었다.
김재현은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3·5차전 결승 타점을, 4·6차전에선 홈런을 날리는 등 6경기에서 23타수 8안타(타율 0.348), 4타점 5득점으로 첫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2002년 시즌 후 엉덩이뼈와 넓적다리뼈를 잇는 고관절에 피가 통하지 않아 상한 뼈를 인공 뼈로 바꾸는 대수술을 받으면서 '선수생활이 끝났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근성과 투혼으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해 일궈낸 결과라 더욱 값졌다.
김재현은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도 13타수 3안타로 타율(0.231)은 보잘것없었지만, 1차전(SK 2대5 패배) 선제홈런에 이어 2차전에서도 3―2로 앞선 7회에 승부에 쐐기를 박는 2점 홈런을 날리며 시리즈 분위기를 주도했다. 팀 주장인 김재현은 "얼마 남지 않은 야구 현역인생을 행복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팀의 3연속 우승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세 번 실패는 없다' 김현수
두산 김현수는 장종훈에 이어 '신고선수' 신화를 쓰는 프로야구 최고 교타자다. 2006년 프로에 데뷔한 그는 2007·2008년 2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참가했지만, 성적은 정규시즌보다 한참 못 미쳤다. 2007년 한화와의 플레이오프에선 5할 타율을 기록했으나, SK와 한국시리즈에선 0.238로 부진했다.
타격 3관왕(타율·최다안타·출루율)에 오른 2008년의 한국시리즈는 더 끔찍한 악몽이었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때는 그나마 타격왕다운 면모를 선보였지만,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선 5경기에서 23타석 21타수 1안타. 타율 0.048이란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았다. 삼진 7개와 병살타 2개로 '역적'이 됐다.
한국시리즈만 되면 웃음을 잃은 핏기 없는 얼굴로 경기를 했던 아픔을 경험했던 김현수에게 올해 SK와의 플레이오프는 결코 놓칠 수 없는 무대다. 김현수는 이미 롯데와의 준(準)플레이오프 4경기에서 13타수 7안타(0.538), 2홈런·3타점·9득점으로 맹타를 휘두르며 타격감을 조율했다. SK가 올해도 '김현수 봉쇄'를 공언하고 나서, 김현수의 각오는 더욱 비장하다. 김현수는 "작년에는 배트에 맞히는 데 주력하다 오히려 더 말려든 것 같다"며 "올해는 삼진을 당하더라도 과감한 스윙을 해 후회 없는 플레이를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