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증을 가진 사람은 동시에 관음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유아기 때 자신의 몸의 일부가 성적 쾌감을 일으킨다는 것을 안 어린아이는 이후 다른 사람의 몸에 있는 해당 부위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게 된다. 더불어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부정적이지 않게 되고 즐기기까지 하게 된다."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욕구가 있다. 혹자는 인간이 동물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의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장 동물적이라고도 한다. 동물과 인간은 그러한 욕구 중 주변 환경으로부터 여러 다양성을 찾고자 하는 호기심의 욕구를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쥐를 대상으로 한 미로 실험에서 쥐에게 항상 다니는 미로를 탐색하게 하다가 다른 길을 열어주면, 쥐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1950년대에 벌린(Berlyne)이란 심리학자는 쥐의 탐색행동을 통해 동물이 지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의 욕구를 알아냈다. 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고리와 상자를 가지고 놀게 했다. 처음부터 상자와 고리를 모두 주고 놀게 한 집단의 경우에 비해 상자만 갖고 놀게 하다가 하나를 고리로 바꾼 집단의 경우 새로운 물건에 대한 탐색행동이 훨씬 더 증가한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렇듯 호기심의 욕구는 동물에게도 있는 아주 기본적인 본능이다. 그러나 인간의 호기심은 그 대상이 사람, 사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다는 점에서 동물의 그것과 차별화된다. 지식에 대한 호기심, 특정한 정보에 대한 호기심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호기심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호기심이란 성적 욕구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호기심은 유아적인 성(性) 탐구의 승화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유아기를 벗어나면서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서 성적 탐구가 좌절되고 다른 식으로 승화된다. 그 과정에서 신경증적 억제에 따른 사고의 억압으로 호기심 욕구의 차단이 일어날 수도 있고, 남아있는 성적 호기심이 세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일반적 호기심으로 승화될 수도 있다.
이러한 호기심은 종종 타인의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도 연결된다. 최근 ‘우리 결혼했어요’(MBC)나 ‘연애불변의 법칙’(올리브TV)과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가상의 부부가 그들의 생활을 낱낱이 보여주거나 실제 연인의 진짜 일상을 보여주는 방송이다. 특히 일반인의 생활을 그대로 생중계하는 리얼리티쇼는 이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독일의 민영 방송사 RTL2가 민간인 10명을 한 집에 몰아넣고 카메라 28대로 24시간 일거수일투족을 100일간 촬영한 ‘빅 브라더(Big Brother)’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본격적인 리얼리티쇼의 전성시대는 미국 CBS가 2000년 미국판 ‘빅 브라더’를 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특히 쇼피터 위어가 감독을 맡고 짐 캐리가 주연한 영화 ‘트루먼쇼’(1998)에서는 인간이 지닌 ‘들여다보고 싶은 심리’, 즉 호기심의 욕구가 잘 반영되고 있다. 이 영화는 태어나서부터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방송되고 있는 줄을 혼자만 알지 못했던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본인만 몰랐을 뿐 그는 24시간 내내 만인의 시선을 받는 스타였고,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었으며, 그가 딛고 있었던 주변 동네들은 세트에 불과했다.
물론 과거 원시시대에 비해 현대사회로 오면서 사생활 보호가 중요해졌다. 집과 집 사이의 물리적 담들은 높아져갔고 아파트 바로 옆집과의 대화도 단절한 채 서로 간의 소통과 관계의 담은 높아만 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인간은 문을 닫으면 닫을수록, 담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안이 궁금해지고 더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법이다. 늘 밖으로 드러나 있는 손에는 눈이 안 가면서 옷으로 가려져 있는 몸에는 눈이 더 가게 된다.
최근에 이러한 인간의 들여다보고 싶은 심리가 반영되어 식사하는 것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레스토랑이나 찻집, 일하는 것이 보일 수 있게 전면을 유리로 만든 사무실 등 이제는 더 이상 숨기려 하지 않는 반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블로그에 자신이 오늘 무얼 먹고 무얼 했는지, 어떤 감정인지, 자신의 일상생활을 여과 없이 올려놓고, 주변 사람들이 열어보는 조회수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신에게 가지는 타인의 관심에 부응하여 오히려 스스로를 노출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인간에게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이 소통하는 데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과감히 드러내는 노출과 상대의 생각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보화사회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엔 이러한 노출욕구와 관심욕구가 적정수위를 넘어 더 자극적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베네데토(Benedetto)라는 학자는 “사생활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타인의 사생활을 보고 싶어하고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고자 하는 환상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미 뉴욕 맨해튼의 고층 아파트 주민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방안을 숨기기 위해 커튼을 닫지 않는다고 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모든 성도착은 능동적인 면과 수동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노출증을 가진 사람은 동시에 관음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유아기 때 자신의 몸의 일부가 성적 쾌감을 일으킨다는 것을 안 어린아이는 이후 다른 사람의 몸에 있는 해당 부위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게 된다. 더불어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부정적이지 않게 되고 더 나아가 즐기기까지 하게 된다. 다시 말해 관음증과 노출증은 각각 보고자 하는 충동인 절시증(scopophilia)의 능동적, 수동적 형태라 할 수 있다.
단순한 호기심의 욕구에서 다른 사람들을 궁금해하는 인간의 행동은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의 것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심리가 정상에서 벗어나 관음증으로 연결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피핑톰(Peeping Tom·훔쳐보는 톰)’ 우화 속의 ‘톰’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11세기 영국의 영주 레오프릭이 혹독한 세금으로 마을 주민들을 수탈하자 그의 아내 고디바는 남편에게 세금을 감면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영주는 ‘당신이 발가벗은 채로 마을 한 바퀴를 돌면 요청을 들어주겠다’고 대답했다.
남편 말을 들은 고디바는 진짜 벌거벗은 채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그녀의 고운 마음에 탄복한 마을 주민들은 그녀가 마을을 도는 동안 모두 창을 닫고 커튼을 친 채 밖을 내다보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단 한 명, 재단사 톰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몰래 그녀의 나신을 쳐다봤다고 한다. 이후 ‘피핑톰’은 관음증 환자를 뜻하는 용어가 됐다.
몇 달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투시안경 해프닝을 보며 ‘피핑톰’ 우화를 떠올린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인 ‘호기심의 욕구’가 어느 순간 울타리를 뛰어넘어 많은 이들이 정해놓은 약속과 윤리를 어기는 수준까지 이르고 있다. 말하자면 ‘피핑톰’의 부산물이다. 별로 달갑잖은 이런 부산물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