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체조 스타들에겐 '여왕' 또는 '요정'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화려한 의상에 빼어난 미모를 갖춘 10대 후반~20대 중반의 선수들은 한눈에 '귀하게 자란 딸'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국내 리듬체조 선수들의 경기장 밖 생활은 대부분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다.

리듬체조 전용 매트(가로 13m, 세로 13m)가 국내에 2개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은 물론, 부모들이 힘겹게 훈련비용을 마련하는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의 선수들이 적지 않다.

작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의 역대 최고 성적(개인종합 12위)을 내며 스타로 떠오른 신수지(18·세종대)도 풍족함과는 거리가 멀다. 베이징올림픽 당시 신수지가 후프 경기를 할 때 입었던 경기복이 '헌 옷'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러시아 국가대표 이리나 차치나가 2004 아테네올림픽 때 입었던 옷인데, 2007년 5월 신수지와 어머니 문광해(54)씨가 자비로 러시아 전지훈련을 갔을 때 800유로(약 140만원)를 주고 샀다. FIG(국제체조연맹) 부회장을 지낸 러시아 체조계의 대모 격인 비너르가 훈련하는 신수지를 보고 "재능이 뛰어나다"며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중고 의상'을 새 옷의 절반값에 줬다고 한다.

작년 베이징올림픽에서‘중고 경기복’을 입고 후프 연기를 하는 신수지.“ 리듬체조를 하고 싶다는 아이들을 보면 뿌듯하지만, 전용매트도 없는 곳에서 연습할 아이들이 걱정된다”고 했다.

어머니 문씨는 "비너르가 수지의 경기복을 보고는 '이런 걸 입느냐'고 하더라"며 "당시 수지가 갖고 있던 국산 경기복은 러시아 선수들의 것에 비해 디자인 등이 창피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신수지는 당시 사춘기 소녀였지만 헌 옷이라는 거부감보다는 예쁜 디자인이 채점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주저 없이 그 옷을 받았다고 한다. 신수지는 경기복 왼쪽 어깨에 붙어 있던 러시아 팀 후원 업체의 문양을 떼고 태극기를 붙이고 출전해 한국 사상 최고 성적을 일궜다.

신수지는 작년 세마 스포츠마케팅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고, 현대캐피탈·자생한방병원 등의 후원으로 훈련비 부담은 줄었지만, 부모들은 여전히 쪼들린다고 한다. 의정부 미군기지에서 전기 계통 기술자로 일하는 아버지 신병욱(54)씨는 "러시아 전지훈련을 시작한 2007년부터 국제대회 참가를 비롯해 매년 약 1억원가량이 수지에게 들어간다"며 "마이너스 통장도 3개를 만들었다"고 했다.

신수지와 함께 한국 리듬체조를 이끌 유망주로 꼽히는 손연재(15·광장중)의 어머니 윤현숙(41)씨도 "연재를 훈련시키는 데 1년에 4000만~5000만원이 들어간다"며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저녁엔 딸의 경기복을 손수 만들고 있다. 딸의 훈련비를 대기 위해 야간에 대리운전을 하는 부모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리듬체조 시설도 매우 열악하다. 리듬체조 전용 매트가 서울 태릉선수촌과 서울 세종고에 각각 1개씩 총 2개밖에 없어 선수들은 지방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갈 때마다 고통을 호소한다. 충격흡수가 잘 되는 전용 매트가 없을 경우 부상을 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신수지는 "8월 회장배(경기도 김포) 때도 경기 전날 연습을 하다 발목이 퉁퉁 부어 진통제를 먹고 경기를 했다"고 말했다. 리듬체조를 관장하는 대한체조협회의 지원도 올림픽 메달 가능성이 있는 기계 체조에 집중돼 있다.

세마 스포츠마케팅 이성환 대표는 "한국에서 리듬체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도전"이라며 "꿈과 재능을 가진 요정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