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실제로 쓸 수 있는 소득을 가리키는 국민총처분가능소득이 올 상반기 502조797억원을 기록해 작년 상반기보다 0.2%, 8700억원 늘었다. 국민총처분가능소득은 국민총소득(GNI)에서 해외에 무상 송금한 금액을 빼고 무상으로 받은 금액을 더한 것이다. 증가율 0.2%는 1970년 관련 통계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그나마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덕분에 국민들 지갑이 더 얇아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6월 말 현재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친 가계신용 잔액은 697조7493억원으로 1년 전보다 5.7%, 37조4000억원 늘었다. 소득은 거의 그대로인데 빚만 잔뜩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신용 배율은 1.39배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시 말해 소득으로 가계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는 얘기다. 빚을 내 흥청망청 써왔다는 미국도 가계신용 배율은 1.33배로 우리보다 낮다.

가계 부채가 늘어난 가장 큰 요인은 주택담보대출이다. 상반기에만 25조원 가까이 늘었다. 올 들어 일부 지역 집값이 들썩이자 더 늦기 전에 집을 사겠다며 대출받는 사람들이 늘고 그 때문에 집값이 더 뛰어 주택담보대출도 늘어나는 연쇄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이자 부담이 줄어든 덕분에 큰 문제가 없었다.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금리 정책으로 올 상반기 가계대출 평균금리는 작년 10월보다 2%포인트 이상 낮아져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가 작년 10월보다 6000억~7000억원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은 버틸 만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문제다. 경기 회복과 함께 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조금씩 오르고 있다.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막으려고 기준금리를 올리면 금리 상승폭은 더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험수위에 차 있는 가계 부채 문제가 폭발할 수 있다. 가계 부실이 금융기관으로 번지면서 금융위기를 낳는 사태가 다시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서울과 수도권의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강화했다. 집값 안정과 함께 가계 부채 문제를 염두에 둔 조치다. 그러나 대출규제만으론 문제를 풀기 어렵다. 중·단기 위주인 주택담보대출을 장기로 바꾸는 것을 비롯한 보완책과 일자리 창출로 소득을 늘리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가계 부채의 뇌관이 터지지 않도록 정부의 세심한 정책관리와 함께 국민과 금융기관들도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