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불 땡기고 디카 준비해 주시고…."

11일 오후 3시쯤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 센텀빌딩 6층 부산시민센터 안 강의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 풍의 어른 5명과 울긋불긋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앳된 대학생 10여명이 웅성거리며 떡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있었다.

앞 강단 칠판 위엔 '홈리스(노숙인) 자서전 쓰기'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들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10여년 차의 노숙인과 자원봉사 대학생.

부산시민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노숙인 자서전 쓰기’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로 나선 대학생들이 노숙자들 경험담을 기록하고 MP3로 녹취하고 있다.

"머리 크고 나서 처음 받는 생일잔치"라는 김모(64)씨의 웃는 얼굴은 케이크를 자를 때 굳어졌다. 눈시울도 촉촉해졌다. 이는 부산시자원봉사센터에서 5~18일 사이 운영 중인 방학 중 대학생 자원봉사 프로그램인 '세상을 바꾸는 젊은이들(이하 세바)'의 9가지 테마 중 하나.

'노숙인 자서전 쓰기'는 노숙인들이 과거를 회상하면 대학생들이 녹취, 정리해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대학생들의 녹취 전 자서전 컨설턴트 배찬호(45)씨가 "자녀가 태어날 때 날씨는 어땠나?" "어렸을 때 주로 어디서 놀았나"는 등의 질문으로 노숙인들이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세바'의 테마는 '노숙인 자서전 쓰기' 외에 ▲농가 일손을 돕는 '체험 삶의 현장' ▲홀로 사는 노인 가정방문 봉사와 장수사진을 찍어주는 '장수하세요' ▲지역 아동센터의 학습·정서지도를 해주는 '초딩 방학도전' ▲다문화 가정 이해하기 등이다.

부산시자원봉사센터 안덕우 센터장은 "비록 지식·기술에 있어선 하버드나 서울대에 뒤떨어지겠지만 이웃을 아끼고 남을 위할 줄 아는 마음은 그에 못지않은 지역의 인재를 만든다는 게 '세바'의 목표"라고 말했다.

'노숙인 자서전 쓰기'만 해도 그렇다. 노숙인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다 보면 자립·자활의 희망을 스스로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마련됐다. 이 테마를 주관하고 있는 부산밥퍼나눔운동본부 손규호(52) 회장은 "노숙자 자서전 쓰기는 전국에서 우리가 처음일 것"이라며 "젊은 대학생들이 구구절절한 노숙인들의 고단한 삶을 정리해주면서 많은 충격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바'엔 고려대, 인하대, 제주대, 대구한의대, 관동대, 부산대, 부경대, 부산교대, 동아대, 동의대 등 전국 20여개 대학의 학생 100명이 참가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9개 테마 중 하나를 택해 자원봉사를 한다. 테마별로 5~20명이 참여 중이다. 이 중 '손끝 사랑'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영어 원서 점역(점자로 고침)을 하는 작업이다. 'A Student's Grammar Of The English Language' 등 유·초·중등 교원 임용 시험에 필요한 책 2권을 점역하고 있다.

'다문화 이해하기'는 다문화 가정의 주부에게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거나 그 집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또 북구·사하구 등 4개 지역에서 다문화 가족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펼치기도 한다.

다문화이해하기팀에서 자원봉사 중인 윤혜진(22·부경대4년)씨는 "직접 만남을 통해 다문화 가족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이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