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문·사회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공간 담론이 전성기를 누리면서 '지정학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재현으로서 공간에 관심을 갖는 공간 담론에서 이 용어는 필수불가결한 수사(修辭)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7월 1일자) 바로 이 코너에 "'지정학적'이란 말은 없다"는 글이 실렸다. 이 글의 필자는 학문 자체의 상황을 설명할 때는 '지정학적(地政學的)', 실제 상황에 대해서는 '지정적(地政的)'이라고 쓰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이론적 근거도 없이 옳고 그름을 가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두 어휘의 연원과 의미, 관용화된 정도를 짚어 보는 일이 우선이다.
일본의 경우, 실제 상황에 대해 대다수 인문·사회 과학도가 '지정학적'을, 일부 인사가 '지정적'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종합지나 지역연구 전문지에서 수년간의 용례를 집계해본 결과 '지정학적'과 '지정적'을 쓰는 비율은 20대3 정도였다. 결국 개인적 선호 문제로 귀착되는 셈이다. 예컨대 패스트푸드를 먹느냐, 품격 있는 요리를 선택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1936년 일본에서 번역어 '지정학(地政學)'이 나오면서 '지정학적'이란 관형사도 관용적으로 쓰여 왔다. '지정'이라는 명사는 없었다. 그런데 원래 용어에서 '학' 자가 빠진 '지정적'이라는 관형사부터 먼저 등장했으니, 이것은 정통적인 출자(出自)는 아니다.
'~학적'이란 말은 허식이 아니라 학문적 개념에 근거해 체계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그럼 이제 '지정'이란 말이 있다고 치고, 그 의미를 정의해 보자. 지정학과 별개의 지정이란 무슨 뜻일까. 토지 정치? 지역 정치? 지구 정치? 지정학의 핵심 과제가 국가 간 역학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보면, '지정'이 과연 이 의미를 담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