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 할 책의 진도가 나가지 않아 고민한 적은 없는가? 반대로 너무 책을 빨리 읽어서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은 적은 없는가? 물론 책의 내용을 음미하며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글을 천천히 꼼꼼하게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천천히 깊게 읽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간되는 서적만 해도 수십 권에 이른다. 그런 책들은 한결같이 속독은 금물이라고 나무란다. 그런데 과연 천천히 읽어야만 이해가 잘 되는 것일까? 빨리 읽으면서도 깊게 읽을 수 없을까?
◆어떤 속독훈련을 해야 할까?
한국은 속독교육이 넘쳐 나고 있다. 정보 전쟁 시대인 지금 글을 '빠르게 정확히'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과대광고로 포장된 속독교육은 '빨리 읽기'에 집중된 경우가 대다수이다. 분당 몇 글자를 읽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숫자만이 아니라 정확히 그 의미를 파악했느냐는 것이다. 빨리 읽기(fast reading)가 아닌 빠르게 이해하기(speed understanding)를 가르쳐야 한다.
또한 대부분의 속독교육은 국어로만 이뤄진다. 그러한 속독교육의 효과는 오직 학원 규모의 사설 국어 경시대회에만 적용 가능하다. 실제 공부에 적용하기도 어려운데다가 외국어 속독(영어 직독직해)의 필요성이 증가되는 추세에 이런 '알맹이 없는' 속독기술교육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어떤 속독훈련이 필요한 것인가? 진정 '독해력 향상'을 위한 속독교육이라면 기초적인 읽기능력을 키우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기억이 있는 'SQ3R'이 그것이다. 'SQ3R'은 'Survey, Question, Reading, Recite, Review'의 첫 글자를 딴 것으로 독자 자신이 스스로 질문을 던져, 자기 점검과 통제를 하는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읽기 전략을 토대로 빨리 읽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속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속독훈련에 필요한 것은 읽기에 대한 '동기 부여(motivation)'이다. 동기가 지속적으로 부여되면 글 읽기가 쉬워진다. 글 읽기가 쉬워진다는 것은 새롭게 받아들인 글의 내용이 뇌에 저장된 지식과 쉽게 융합하는 것을 말한다. 기억 속에 저장된 지식을 스키마(Schema)라고 하는데, 이것은 독해 이해력을 높이는 데 핵심요소가 된다. 기억 속에 저장된 지식이 많은 사람은 지식이 적은 사람에 비해 독해 속도가 빠르고 이해의 폭도 넓다.
결과적으로, '독서전략, 동기부여, 스키마'에 집중된 속독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중에 난립하는 속독교육 프로그램으로 세 가지를 모두 가르치기는 힘들다. 정답은 어디에 있을까? 글을 읽는 독자, 바로 자신에게 있다. 스스로 시간을 정해 글을 빠르게 읽는 훈련을 해나간다면 빠른 시간 안에 글을 읽어내는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일단 빨리 읽으려고 노력하라
아무리 빨리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한번을 읽어도 정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것이다. 이는 읽기속도에 대해 흔히들 범하는 오류다. 천천히 읽는다고 이해가 잘 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느리게 읽는 사람은 대개 집중을 하지 않기 때문에 눈은 글을 향해 있지만 정작 내용이 무슨 의미인지는 파악하지 못하곤 한다. 오히려 빠르게 읽으려고 노력할 때 우리 뇌는 권태에서 벗어나고 부수적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져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느리게 읽는 사람 중 다수는 낱짜 단위로 읽거나 한 단어씩 읽는 등 한 번에 읽고 이해하는 범위가 좁다. 글은 한 단어가 다른 단어들과 연관을 맺음으로써 의미 있는 진술을 하게 된다. 우리의 뇌가 한 단어 한 단어씩 의미를 받아들이게 될 경우, 너무 적은 양의 정보를 조금씩 얻게 돼 전체 의미를 구성하고 깨닫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보통 영화나 텔레비전 등을 보면서 정보를 신속하게 받아온 사람들은 한 단어씩 읽는 독서로부터 얻는 정보에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독서는 짜증나고 지루한 활동이 된다. 만약 한 번에 4~5단어씩 읽을 수 있다면, 즉 빨리 읽게 되면 앞뒤 문장의 연관 관계 속에서 전체의 의미를 더욱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이해도가 높아지고 독서를 흥미 있게 할 수 있다.
흔히 '잘 이해하기 위해서' 정독을 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이해수준을 벗어나는 글은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이해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텍스트의 쉽고 어려움에 달려 있다. 텍스트가 쉽다는 것은 텍스트의 내용이 뇌에 저장된 지식과 유사해 쉽게 기존 지식과 융합하기 때문이고, 텍스트가 어렵다는 것은 새로운 지식이 뇌에 새로운 자리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어렵다는 것은 새로운 지식이 기억 속에 저장된 지식과 다르다는 의미다. 기억 속에 저장된 지식, 즉 스키마에 따라 읽는 내용이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 이해도를 높이는 스키마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어떻게 읽기속도를 높일 수 있나?
읽기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단어를 덩어리로 묶어 읽어서 그 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눈이 글을 지각하는 범위를 넓혀야 한다. 6㎝ 내에는 보통 4~5개의 단어가 들어 있다. 우리가 순간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사물의 개수는 4~9개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6㎝ 내에 있는 글자는 충분히 묶어 읽어 이해할 수 있다. 한 단어씩 읽는 것에서 벗어나서 한 행의 1/2정도씩(약 6㎝) 읽어나가는 연습을 꾸준히 한다. 이렇게 읽는 것에 성공하게 되면 사람의 노력에 따라서는 한 행을 한꺼번에 읽을 수도 있다. 한 단어씩 읽는 읽기 습관을 버리고 지각시야에 들어 있는 단어군을 한꺼번에 읽을 때 앞뒤 문장의 연관 관계 속에서 전체의 의미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목적에 따라 읽기속도를 조절하며 읽어라
글을 '잘'읽는 사람은 어떤 글은 천천히, 어떤 글은 빠르게 읽는다. 천천히 정독하며 읽어야 할 글이 있고 단시간 내에 속독 또는 통독하며 읽어야 할 글이 있다. 글의 종류에 따라서 또는 글을 읽는 목적에 따라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능숙한 독자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읽는 목적에 따라서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시험 대비를 하느라 참고서를 읽을 때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한숨 돌리기 위해 소설책을 읽을 때의 속도가 다르다는 말이다.
책 한 권을 정독해서 한 번 읽는데 3시간이 걸린다고 했을 때, 동일한 시간 안에 읽기 속도를 빠르게 하여 2~3번 반복해 읽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실제 학교 시험이나 입시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를 원한다면 하루 빨리 '속독'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