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롱하기는 수정처럼 맑고(玲瓏肖水精)/ 단단하기는 돌과 맞먹네(堅硬敵山骨)/ 이제 알겠네 술잔 만든 솜씨는(�z知�b延塡功)/ 하늘의 조화를 빌려왔나 보구려(似借天工術)….'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 청자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읊었다.

비색(翡色) 영롱한 강진청자는 고려 최고의 브랜드 명품이었다. 명맥이 끊기고 전설로 남은 지 수백년. 지금 한반도 서남쪽 전남 강진은 고려청자의 전진기지로 새롭게 용틀임하고 있다. 천년 전 고려청자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모양과 빛깔의 청자를 창조하려는 장인의 후예들의 열정이 1300도 가마의 열기보다 뜨겁다.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탐진요(耽津窯) 전시장에는 국보를 재현한 작품이 가득 진열돼 있었다. 구름 속에서 춤추는 수십 마리의 학을 새긴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국보 68호), 용머리의 형상이 생생한 청자비룡형주자(靑磁飛龍形注子·61호)를 그대로 따라 만든 작품들이다. 건너편 선반의 주전자와 찻사발 사이로 눈에 익지 않은 청자 제품들이 보였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바라보는 장인의 눈빛이 그윽하다. 강진청자박물관 윤태영 연구개발실장의 얼굴에 알듯 모를듯 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생수를 보관하는 청자 정수기 물통, 햐얀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수반(水盤)형 가습기…. 김경진 대표는 둥근 찬합 모양의 제품은 옛 여인네들이 쓰는 분첩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캔디 보울(candy bowl)이라고 했다. 푸른 빛이 정갈한 유골 보관함, 청색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어항도 있었다. 에스키모가 사용하는 이글루 모양의 둥그런 청자 조형물은 쓰임새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건 청자 견사(犬舍)입니다. 가족만큼 사랑하는 애완견들의 실내 생활 공간이죠. 심미적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물로 닦을 수 있어 위생적이고요. 안쪽에 센서를 달아 따뜻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개집까지 청자로 만드느냐 뭐라 할 사람도 있겠지만 안 될 건 또 뭡니까. 몇천 달러짜리 외국 도그 하우스는 되고, 이건 안 된다는 말인가요? 저는 지금 생활 속에서 청자가 도전해야 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학(鶴) 새기고 구름 파넣는 것만 잘한다고 강진 고려청자를 제대로 계승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김 대표의 탐진요는 최근 국보 청자와 태안 해저에서 발굴된 유물을 재현한 작품 등 90여점을 수출했다. 연말까지 보낼 1000여점 중 1차 선적분으로 청자 목걸이에 끼우는 액세서리도 포함돼 있었다. 그동안 선물용으로 한두 점씩 판매한 적은 있지만 수출 절차를 밟아 이렇게 대량으로 나간 것은 강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김경진 탐진요 대표가 새로 개발한 청자 가습기와 견사(犬舍).

높이가 30㎝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30만원, 상감청자운학문 7첩 반상기 세트는 35만원이라고 했다. 먼 여행길에 혹시 깨질세라 방진 포장을 하면서 김 대표는 "물레 돌려 흙 빚는 일도 생각만 바꾼다면 사업성이 충분하다"고 했다.

건너편 청우요의 윤윤섭 대표는 '생활 청자의 전도사'였다. 윤 대표는 광주의 한 건설회사의 귀빈식당에 70여개로 이뤄진 반상기 세트 20개를 판매했다. 찬기와 접시는 물론 수저 받침과 휴지꽂이까지 갖춘 것으로 한 세트에 20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일본 음식점에서도 그의 청자 식기 세트를 구입해 갔다.

"청자 하면 비색 영롱한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가 떠오르죠? 매일 받는 밥상과 식탁에서 청자를 쓴다는 게 왠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생각과는 달리 고려 당시에는 청자가 폭넓게 사용됐다고 합니다. 생활 밀착형 밥그릇, 국그릇이 지금까지 숱하게 전해지고 있어요."

2006년 1억원에 팔려 화제가 됐던 청자상감당초문호. 높이 1m, 둘레 3.2m의 대형 청자를 안고 있는 자가 윤도현 도강요 대표다.

이젠 실생활에서 청자를 써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쓰다보면 깨질 수도 있는 일인데, 그걸 두려워만 해서야 되겠느냐"면서 "언제까지 국보 68호를 본뜬 매병을 신주단지처럼 바라보고만 있을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강요(道江窯)의 윤도현 대표는 지붕 기와를 청자로 올렸다. 30여년 전 이곳 청자골에 정착한 그는 초대형 작품을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6년에는 높이 1m 둘레 3.2m에 무게가 300㎏에 달하는 청자상감당초문호(靑磁象嵌唐草紋壺)를 청주의 한 사업가에 1억원에 팔았고, 한 해 뒤에는 여의주 모양의 보상문(寶相文)으로 꾸민 비슷한 크기의 작품을 광주광역시의 사업가에게 1억원에 판매했다. 전해내려오는 청자 제품이 아닌 생존 작가의 작품이 억대로 거래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작년에도 5000만원짜리 한 점을 판매했다.

윤씨는 "30년째 고려청자의 맥을 이어왔다"면서 "전통을 계승하는 것 못지않게 남과 다른 작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강진에 있는 단국대 도예연구소는 청자의 명품화 작업의 또다른 한 축이다. 작년 50억원 규모의 R & D 프로젝트 지원금을 받아 청자 기술 개발과 세계적 명품화 사업에도 탄력이 붙었다. 연구소 1층에는 강진지역 곳곳에서 캐낸 흙덩이를 담아놓은 용기들이 가득했다. 마량면 월곡리·남호리, 대구면 수동리, 칠량면 덕동리·영풍리, 강진읍 목리 등 희고 노랗고 붉고 검은 강진 곳곳의 흙 시료가 수집돼 있었다.

정호진 선임연구원은 "도예는 흙에서 시작해서 흙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집터를 만들거나 우물을 파는 등 땅속을 볼 수 있는 공사현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했다. 작업실 선반에는 갖가지 모양의 청자 작품이 보였다. 그는 "청자 작품은 당연히 둥근 모양이어야 한다는 '원형 강박증'도 털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사각형은 물론 꽃이나 나뭇잎 무늬의 그릇은 왜 안 됩니까. 연 이파리를 본뜬 그릇, 포개서 쌓아놓을 수 있도록 만든 손잡이 달린 찻잔, 새가 날아가는 모습…. 눈에 익숙한 원형에서 벗어나 이지러지고 뒤틀린 모양의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청자 제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다른 식기에 비해 무겁고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얘기도 나온다. 몇 년 전 강진군이 군내 주요 음식점들을 대상으로 벌인 청자 식기 보급사업이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이런 불만 때문이었다. 당시 음식점 종업원들은 청자 밥그릇과 국그릇, 접시가 무겁고 쉽게 깨진다면서 사용을 꺼려했다.

반면 청우요의 윤 대표는 "무겁고 든든한 바로 그 부분이 바로 강진 청자의 매력이자 세일즈 포인트"라고 했다. 다른 식기에 비해 비싸지만 오히려 프리미엄 고객의 구매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두 개 식기를 사용할 때에는 주변 식기와 조화를 이루기 어렵지만 한 벌로 제대로 갖출 경우 품격이 느껴진다는 얘기도 있었다.

보다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대중화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 아직은 명품화에 힘을 기울일 때라는 입장도 팽팽하다.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좀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기계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 핸드 메이드(hand-made)의 손맛을 지켜나가는 것이 강진 청자의 진짜 살 길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