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직자나 법조인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수 많은 젊은이들이 고시에 도전하고 있지만, 결국엔 실패해 낭인(浪人)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 본인이 폐인이 되는 것은 물론, 가정까지 파탄에 이르게 해 온 가족이 고통을 겪기도 한다.
6년째 사법고시 준비생인 C씨(35)는 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계속해서 독특한 폭탄주를 권했다. 일명 ‘검사 폭탄주’란다. C씨는 “이렇게라도 기분을 내야죠”라며 웃어 보였다.
“6년 전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고시는 학벌을 안 따지잖아요. 출세는 해야겠는데 지방 대학 나온 것을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고시라고 생각했죠.”
강원도의 한 국립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도전한 C씨. 월 소득이 300만원 정도인 C씨의 가정은 그의 합격을 위해 지난 6년 간 소득의 절반을 쏟아 부었다. 온 가족의 기대와는 달리 낙방을 거듭하던 C씨는 지난 한두 해 동안 고시촌에 퍼져있는 키스방과 토킹바, 유사성행위업소 등을 전전했다.
“고시 뒷바라지 때문에 부모님이 이가 아프셔도 치과 한 번 못 가셨죠”라며 죄책감을 나타낸 B씨는 “지난해부터 부모의 건강이 악화돼 사실상 공부에 손을 떼고 사무직을 알아보고 있지만 오라는 곳이 없다”고 했다.
“칠순을 바라보시는 제 아버지는 편찮으신데도 한 달에 150만원씩은 꼭 보내오세요. 그것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어차피 안 될 줄 아니까 공부는 하기 싫고. 이 나이, 경력에 불러주는 곳은 없고. 그래서 자꾸 유흥에 손을 대게 되요. 현실 도피죠. 어떻게 해야 할지 끝이 안 보입니다.”
본지 설문조사 결과 수험생들은 공직의 가장 큰 장점으로 ‘안정성’(49%)을 꼽았다. 뒤를 이은 ‘공직자로서의 사명감’(15%)이나 ‘명예와 권력’(13%) 보다 월등히 높다.
연세대 사회학과 박찬웅(44) 교수 역시 고시 편중 현상의 가장 큰 요인을 안정성, 이른바 ‘철밥통’에 대한 구직자들의 열망으로 규정했다. 박 교수는 “우선 고시 이외의 직장의 안정성이 높아지면 고시 열풍이 줄어들 수는 있을 것이지만 현재 기업 경영 방향이 노동 유연화 등 인적자원 활용의 경직성을 피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며 “추세가 이렇기 때문에 정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박 교수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안으로 직업에 대한 가치관 변화를 제시했다. 동양 특유의 직장 안정성, 평생직장의 추구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최선을 다하려는 능동적인 직업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직장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고시 쏠림 현상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