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30인치 디스플레이에서 '오늘의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컨디션 불량'을 알리는 신호가 뜨면 디스플레이의 전국 헬스케어 컨설턴트 명단에서 한명을 골라 영상통화로 상담을 받는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자리가 보장된다. 내 집 마련과 자녀교육 고통이 사라지면서 노후자금이 두둑해지고 정부가 지원하는 퇴직연금으로 누구나 풍요롭고 여유 있는 노후를 즐긴다."
지난 2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펴낸 '가슴 설레는 나라'란 책 가운데 '2020년 우리의 삶'을 발췌한 내용이다. 책 표지엔 '이명박 대통령의 미래 비전'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2020년이면 11년 후다. 과연 대한민국 노인들은 그때 '가슴 설레는 나라'에서 노후를 즐길 수 있을까? 솔직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미래는 '오늘'이 쌓인다고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 일다운 일 한번 못하고 인사 때마다 부실·편파 시비만 불러일으키는 무능한 정부, 민생은 뒷전이고 허구한 날 싸움박질로 지고 새는 난장판 국회, 회사는 아랑곳없이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덤벼드는 막장 노조, 혼자 잘살겠다고 불법·탈선 서슴지 않는 일부 부자들이 한데 엉켜 만들어내는 뒤죽박죽 '오늘'이 아무리 쌓인들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대한민국 노인의 '오늘'은 암울하다. 좀 산다는 나라 가운데 노인이 가장 가난한 나라가 한국이다. OECD는 전체 가구 중위(中位) 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5세 이상 노인 가구의 비율로 '노인층 빈곤도'를 따진다. 이 비율의 OECD 국가 평균이 13%다. 한국은 그 3.5배인 45%다. 더욱이 한 달 8만4000원의 기초노령연금 등 정부에서 나오는 공적연금 소득을 빼면 한국 노인 10명 중 9명이 일년 내내 한 푼의 벌이도 없다는 통계도 있다. '끼니를 걱정하는 노인들'은 바로 우리 이야기다.
한국 노인이 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허리가 휘는 집값과 사교육비 부담에 짓눌려 젊어서 모아놓은 재산이 없고, 애들이 커서 겨우 한숨 돌렸다 싶으면 퇴직으로 내몰리는 '조기 폐기처분' 사회 탓이다. 50대 초중반에 은퇴한 중장년층이 직장 다닌 세월보다 더 긴 시간을 할 일이 없어 매일 아침 산으로 '출근'하는 나라는 세상에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몇 해 전 부모 소득이 1% 늘어나면 자녀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날 확률이 2.07배 높아진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부모의 재산과 자식과의 거리는 반비례한다는 얘기다. 국제 비교를 통해 논문을 쓴 교수는 "한국에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가족에 외면당한 채 고립된 삶을 사는 노인들일수록 온갖 만성질환에 시달린다. 병들고 돈 없고 할 일 없는 비참한 노후가 한국을 노인자살률 세계 1등 국가로 밀어 올렸다.
정부는 말로만 '풍요롭고 여유로운 노후'를 외칠 게 아니라 실효성 있는 미래대책을 세워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정부가 당장 할 일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국민에게 강제로라도 노후 대비 저축을 시켜야 한다. 사교육비를 최대한 졸라매고 문화여가비를 아예 없애서라도 노후를 위해 소득의 일정부분을 모으게 해야 한다. 그런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정부가 연금이나 노후보험의 일정액을 대신 보전해줘야 한다. 당장 생활비 없다고 퇴직금 중간정산하고 노후 대비용 저축상품까지 깨서 쓰는 건 지금 배고프다고 내년 농사에 뿌릴 볍씨까지 털어먹는 꼴이다.
둘째, 인생 2모작, 3모작을 준비할 평생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성인의 평생교육 참여비율은 23%로 OECD 최하 수준이다. 다양한 평생교육을 통해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재취업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이상의 노인복지는 없다.
2020년 국가의 흥망을 가르는 조건은 영토나 인구, 부존자원이 아니다. 노인문제를 해결했느냐, 해결하지 못했느냐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흥망도 거기에 달려 있다.
입력 2009.07.27.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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