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룡남은 열등감이 많아서 싫어요."

요즘 직장 미혼 여성들 사이에서 '개룡남'이 화두다. 개룡남이란 '개천에서 용 난 남성'의 줄임말. 20~30대 여성들이 어려운 집안 환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남성들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인터넷 용어다.

개룡남 논쟁은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 '마이클럽'을 비롯, 서울대생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 등의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마이클럽에는 개룡남과 관련된 글이 500개 이상 올라와 있다. 다달이 수백만원씩 시댁에 가져다 드려야 하는 등 시댁의 무리한 요구가 부담스럽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시댁의 어려운 경제적 여건과 성공한 아들에 대한 과도한 보상심리가 결혼 생활에 장애로 작용한다는 글도 적지 않다. 대구에 사는 미혼 여의사인 김모(30)씨는 "개룡남은 집에서 대우받고 자랐기 때문에 아내에게도 그런 기대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남편에게 가사일이나 집안 대소사 분담 등까지 기대하긴 힘들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개룡남 기피 현상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외조를 받고 싶어하는 성공한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생겨나는 신(新)풍속도인 셈이다. 주부 황모(33)씨는 "개룡남은 학벌이나 직업이 좋아서 많이 벌 것이라 생각하지만 남(시댁 식구)이 더 많이 쓰기 때문에 말 그대로 빛좋은 개살구"라며 "개룡남들은 집안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아서 마음의 빚이 큰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천에 남겨진 식구들을 돌봐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효도 용역'을 강요당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난 용을 따라가면 개천으로 끌려들어갈 수 있어요. 전 남편감이 개천에서 태어날 때부터 안살았으면 좋겠고요, 물론 좋은 데서 태어난 용이면 좋겠지만요."(은행원 윤모씨)

결혼 정보업체인 '선우'의 조사 결과에서도 이 같은 심리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달 초 선우가 약사, 의사, 판사, 한의사, 변리사, 변호사 등 전문직 여성 1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개룡남 같은 자수성가한 남성과 집안 좋고 식구들도 기반을 다 갖추는 등 유전적인 장점이 많은 남성 중에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70.5%가 '유전적인 장점이 많은 사람'을 꼽았다. '남성을 소개 받으면 나도 모르게 조건부터 살핀다'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3.3%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선우 홍보팀 신지영씨는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 가운데 자수성가형 남성들을 기피하려는 경향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며 "하지만 남성들 역시 좋은 집안의 여성을 선호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는 개룡남 기피 현상과 관련, 미혼 남성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하는 홍찬양(28)씨는 "사회 상층으로의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배우자감의 집안을 중시하는 경향이 더 커지는 것 같다"며 "하지만 집안이라는 것은 개인의 노력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인데 좀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남성은 "개천에서 난 용은 차라리 낫다, 집안도 한미하고 성공하지도 못한 뱀은 어떻게 하냐"고 한탄했다.

'개룡남' 논쟁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황상민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전문직의 경제적 가치 하락을 꼽았다. 황 교수는 "이전 세대에서는 부유층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소위 '사'자 돌림의 직업만 가지면 충분했다"며 "하지만 요즘은 계층간 이동이 고착화되면서 전문직 종사자도 가족 배경이 든든하지 않으면 본인이 속한 계층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안호용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젊은 사람들은 독립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하길 바라는 경향이 있다"며 "때문에 일부 미혼 여성들이 경제적·정서적으로 시댁과 긴밀히 연결된 자수성가형 남성을 꺼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좋은 배경을 지닌 배우자감을 찾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안 교수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