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가 김나정(35)은 "다른 이와 맺은 관계를 통해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9편의 단편이 실린 그녀의 첫 작품집은 애완동물과 어린이, 여성 같은 약자를 대하는 방식을 관찰함으로써 인간 본질의 여러 양상을 탐색한다. 잘 읽히기도 하지만, 읽고 난 뒤 거울에 비춘 것처럼 자신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게 하는 미덕도 지녔다.
수록작 〈《》〉의 주인공 남자 괄호는 겨울 밤거리에서 얼어 죽을 뻔한 여성을 구해주지만 이후 그녀를 자기 집 지하실에서 사실상 성폭행한다. 여자는 반항하지 않았고 괄호는 그런 여자를 지하실에 둔 채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며 주기적으로 성욕을 푼다.
'괄호는 자기가 여자에게 한 짓은 그리 나쁜 짓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여하간 여자에게 괄호는 생명의 은인이다. 지갑을 주우면 그 중 10분의 1은 주운 사람에게 보상금으로 치러야 한다. 괄호는 여자의 몸 중 아주 일부분만을 이용했을 따름이다.'(71쪽)
치졸한 자기합리화로 선함을 가장하는 위선적 행태는 여자의 임신이란 사건이 터지자 가면을 벗고 날것의 폭력과 자리바꿈을 한다. 작가는 "주인공 이름을 괄호로 한 것은 인간을 감싸고 있는 괄호를 벗겼을 때 드러나는 폭력성이 인간의 모습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방어력이 없는 존재와 그를 지배하는 자 사이에 폭력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실제 삶에서 인간의 관계는 가해와 피해의 구분이 불분명하다"며 "인간은 오리너구리처럼 서로 다른 가치를 몸 안에 지닌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담았다"고 말했다.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뒤 집을 정리하고 개를 내다 버릴 궁리를 하는 남자의 이야기인 〈이것은 개가 아니다〉에서 버려질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애완견이지만, 실제로 버려질 위기를 맞은 것은 그 자신의 목숨이다. 죽어야겠다는 이성의 의지와 살고 싶다는 생의 욕망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개를 버릴 때까지 죽음을 유예하는 새로운 상황으로 발전한다. 관계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는 이런 상황은 동생을 죽인 유괴범 때문에 고통을 겪지만, 동시에 그 유괴범을 잡고야 말겠다는 결의 덕에 생의 에너지를 불태우는 여자의 역설(수록작 〈구〉)을 통해 더 확연히 드러난다.
반복되는 입양과 파양으로 인해 상처입는 고아 윤수와 윤수를 버린 양부모 사이의 관계(수록작 〈주관식 생존문제〉) 역시 강자와 약자라는 구도 아래 펼쳐지지만, 소설을 읽은 독자는 아이를 버린 양부모를 쉽사리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지 못한다. 작가는 "나쁜 사람이 아니어도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지 않으냐?"고 했다. 평론가 허윤진은 김나정의 소설이 "조용한 목소리로 인륜의 여러 국면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며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물음이 점점 더 많아진다"고 분석했다.
입력 2009.07.18. 03:12업데이트 2009.07.1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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