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라틴어는 천주교와 서양문화의 근본을 이룬 언어입니다. 한문이 동양문화의 바탕이듯이 말이죠. 천주교 신앙의 유산을 보존한다는 뜻에서 사전을 펴냈습니다."

천주교 관련 사료전문가인 이순용(52)씨가 《한글-라틴, 라틴-한글 사전》을 펴냈다. 그러나 2624쪽에 이르는 이 사전의 맨 뒷장에는 출판사 이름 대신 저자 이름과 '011'로 시작하는 휴대전화 번호, 은행 계좌번호가 적혀 있다. 상업성이 없다며 출판사들이 사양한 사전을 자비(自費)로 출판한 것이다.

한때 천주교 사제의 길을 밟았던 이순용씨는 “할 줄 아는 게 천주교 자료 정리라 서 이것을 할 뿐”이라고 했다.

이씨는 이 책뿐 아니라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부터 2005년 9월에 서품을 받은 사제까지 4000여명의 이름과 교구·경력 등을 정리한 《한국 천주교회 사제 수품록(受品錄)》,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날짜별로 정리한 《한국 천주교회 일사(日史)》 등 천주교 관련 자료서도 대부분 자비로 펴냈다. 이순용씨는 원래 사제를 꿈꾼 청년이었다. 서울 성신고를 나와 광주가톨릭대를 4학년까지 다니다가 그만뒀다. 사제의 꿈을 접은 대신 그는 천주교 관련 자료와 기록을 정리하는데 20년 넘게 정열을 바치고 있다. 《구약성서 인명색인》(2000) 《한국천주교회년사(年史)》(2007) 등도 펴냈다.

이번에 펴낸 사전도 23년에 걸친 노력의 산물이다. 백민관 신부의 《라틴-한글 사전》과 성염 전 서강대 교수 등의 저서를 참고하며 구체적인 용례를 담았다. 이씨는 "자동차 이름에도 '말(馬)'이란 뜻의 라틴어 '에쿠우스(equus)'가 쓰이고, 주교님들의 사목표어도 모두 라틴어이고, 서울대 문장(紋章)에 적힌 'veri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라는 문구도 라틴어"라며 "라틴어 성가(聖歌)나 전례 담당자, 사제들에게는 쓰임새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앞으로 〈시편(詩篇)〉 〈창세기〉 〈탈출기·레위기〉 〈민수기·신명기〉 등 성경을 라틴어·희랍어·히브리어·영어 대역본(對譯本)으로 펴낼 계획이다. 그는 "신학생 시절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을 하나 둘 만들다 보니 저 스스로 성취감에 즐겁게 작업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