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북한이 사상 처음으로 내년 남아공월드컵에 함께 출전하게 됐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사를 보면서 문득 축구는 왜 11명이 경기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축구는 언제 무슨 이유로 11명이 뛰게 됐나요?

― 서울 강남구 독자 정성훈씨

A: 영(英) 사립학교 기숙사 방정원이 10명인데서 유래

진중언 스포츠부 기자

공을 발로 차는 형태의 스포츠는 고대 그리스를 비롯해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영국을 축구의 종주국으로 꼽는 것은 가장 먼저 규칙을 정하고 보급해 현대적인 개념의 스포츠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1명이 축구를 하게 된 것 역시 영국에서 정해졌습니다. 1850년대까지 축구는 선수 정원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보통 15~20명이 한 팀을 이뤘고, 60명이 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셰필드 스쿨, 케임브리지 등 영국 사립학교들이 학교 대항 축구를 하면서 선수의 수가 11명으로 굳어졌습니다.

19세기 당시 영국 사립학교들은 모두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기숙사는 방 하나에 학생 10명씩을 수용했다고 합니다. 각 방에는 10명의 학생 외에 방장 또는 사감 역할을 맡은 시니어가 있었는데, 이 사람을 포함해 기숙사 방 단위로 축구 경기를 했기 때문에 팀 정원이 11명으로 정해졌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학교 대항전을 통해 하나씩 만들어진 축구 규칙들은 1863년 12월 8일 영국축구협회(FA)가 창설되면서 공식 확정됐습니다. 그러나 11명이 축구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은 19세기가 거의 끝나갈 때에야 영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보편화됐습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크리켓과 필드하키도 한 팀이 11명으로 구성됩니다. 축구와 럭비를 모델로 삼아 미국에서 만들어진 미식축구도 공격과 수비 때 팀당 11명씩 공방을 펼칩니다. 야구팀의 정원이 9명으로 정해진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식 기록이 남아 있는 첫 경기인 1846년 6월 '니커보커스 클럽'과 '뉴욕 나인'의 경기는 한 팀이 9명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1891년 캐나다 출신의 체육교사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실내 스포츠로 고안한 농구는 처음엔 인원 제한이 없었지만 1895년 1팀을 5명으로 정한다고 규정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