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종종 가상공간을 상상하면서 현재의 '대체(代替) 역사'를 기술한다. 배명훈의 연작소설집 《타워》는 '빈스토크'라는 가상공간을 통해 정치·경제·외교·전쟁·인구·연애를 각각 주제로 삼은 여섯 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빈스토크'는 674층짜리 초고층 빌딩이다. 인구 50만 명이 그 안에 모여 사는 도시국가다. 과학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미래의 도시국가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희한한 사건들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연상케 한다. 인터넷 공간을 이용한 장르 문학의 신예로 주목받는 작가 배명훈(31)은 "털면 먼지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 소설집의 첫 이야기인 〈동원박사 세 사람〉은 "어떤 술은 화폐로 통한다"는 명제에서 시작한다. 35년산 고급 술병에 전자 태그를 붙여 상류사회에 유통시킨 뒤 그 이동경로를 추적하면서 그 사회의 권력 분포 지도를 그린다는 이야기다. '어떤 술은 돌고 돌아 본인에게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는 식으로 일상화된 부정부패를 풍자한다. 욕망의 무한 경쟁으로 인한 미래의 풍속도가 오늘의 한국사회를 풍자한 듯 한데, 작가는 "오해다. 그런 건 어디에나 있는 문제다"라고 발뺌을 한다. 이런 오리발에도 불구하고 소설가 이인화는 "한국 사회의 숨겨진 치부를 헤집고, 지금 이곳의 고통을 가상의 리얼리티로 표현한 사회적 과학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입력 2009.06.1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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