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Putin) 러시아 총리는 4일 전용 헬리콥터로 피칼료보라는 한 도시를 찾았다. 이곳의 유일한 공장인 시멘트·알루미늄 공장이 3개월째 임금을 체불하면서, 주민 2만3000여명 중 절반이 빈곤 상태에 빠졌다. 근로자 400여명은 공장 재가동과 체불 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2일 시위를 벌였고, 이는 러시아 언론에 소개됐다.

점퍼 차림의 푸틴은, 양복을 입은 공장 소유주 올레그 데리파스카(Deripaska) 등과 함께 이 공장의 회의실에 앉았다. 데리파스카는 지난해 러시아 최고 갑부(재산 286억달러·약 35조원)로 부상한 인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왼쪽)가 4일 러시아 피칼료보의 시멘트·알루미늄 공장 회의실에서 공장 소유주인 재벌 올레그 데리파스카(일어선 이)를 노려보고 있다. 푸틴은 이날 공장 정상화를 위한 문서에 서명하라며 데리파스카에게 펜을 집어던지고 ‘바퀴벌레’같은 존재라며 면박을 주었다.

5일 국영 1TV에 따르면, 한 여성 근로자가 회의실에서 "3개월째 급여를 받지 못했다"고 푸틴에게 호소했다. 그러자 푸틴은 검지손가락으로 데리파스카를 가리키며 "(공장 가동을 위한) 합의문서에 서명했냐"고 물었다. 데리파스카가 "그렇다"고 하자, "그런데 왜 서명한 것이 안 보이나. 이리 와 서명하라"며 들고 있던 문서와 펜을 집어던졌다. 데리파스카는 고개를 떨군 채 푸틴에게 다가가 문서를 한장씩 넘겨가며 서명했다. 마치 교사에게 혼나는 학생같았다.

푸틴은 계속 흥분했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왜 그저 '타라칸(바퀴벌레)'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만 했나? 왜 책임지고 결정 내리는 사람이 없어"라고 호통했다. 또 "근로자 수천명의 삶이 당신들의 야심과 탐욕의 볼모가 되고 있는데, 당장 밀린 급여를 지급하라"고도 했다. 데리파스카는 두 손으로 입을 감싸고 40분의 회의 내내 고개도 못 들었다. 곧이어 밀린 임금이 지불되고, 이를 받으려는 근로자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 모든 광경은 국영 TV로 방영됐다. 피칼료보 주민들은 "푸틴 때문에 급여를 받게 됐다"며 환호했다.

총리실 대변인은 푸틴이 TV로 보도되는 자리에서 훈계성 행동을 한 데 대해,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작년 8월 5.6%였던 실업률이 5월 말 10%를 넘어서면서 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자, 그 책임을 '재벌들'에게 떠넘기려는 푸틴의 계산된 행동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