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들이 기다렸던 세기의 대결은 두 차례의 결정적 순간에 승패가 엇갈리게 됐다. FC 바르셀로나의 사뮈엘 에토가 경기 시작 10분 만에 만들어낸 선제골, 박지성의 교체 아웃과 함께 이어진 리오넬 메시의 추가골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침몰시켰다.

28일 새벽(한국시간) 이탈리아 로마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열린 바르셀로나와 맨유 간의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경기를 앞두고 있었던 수 많은 예상들은 시작부터 보기 좋게 빗나갔다. 킥 오프와 함께 10분까지 볼을 소유하고 공격을 주도했던 것은 맨유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앞세운 수 차례 결정적인 슈팅과 박지성의 위협적인 리바운드 슛 등의 파상공세는 맨유가 수비 위주의 역습 작전으로 나설 것이라는 예상을 완벽하게 벗어난 모습이었다. 하지만 몇 차례 실점 위기를 넘긴 바르셀로나는 10분 경 단 한 번의 공격 기회를 통해 선제골을 뽑아내며 '디펜딩 챔피언'을 당황시켰다. 마치 격랑이 치듯 경기 분위기는 반전됐다.

중원에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돌진을 가만히 놔뒀던 마이클 캐릭은 마무리 패스를 받은 에토가 문전에서 네마냐 비디치를 가볍게 제치자 뒤늦게 온 몸을 던지며 슈팅을 막으려했지만 볼은 에토의 발을 떠나 맨유의 골문을 향하고 있었다.

이 실점 이후 맨유 선수단의 집중력은 이례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특히 실점 상황의 빌미가 된 캐릭은 평점심을 잃은 듯 불안정한 플레이를 보였다. 이로 인해 경험이 일천한 안데르송이 함께 흔들렸고, 라이언 긱스도 중원을 혼자 이끌기 버거웠다. 중원을 완전히 빼앗기자 수비진도 덩달아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맨유가 주도하던 경기는 단 한 골로 바르셀로나가 완벽히 장악하게 됐다.

이후 호날두를 중심으로 미약하나마 추격 의지를 보이던 맨유는 후반전에 접어들면서 연이어 공격수를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안데르송을 빼고 카를로스 테베스를 투입해 박지성을 좌측 미드필더로 이동시킨 선택은 맨유가 균형을 잡는데 도움을 줬다. 박지성은 공격 마무리 부분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으나 그 외의 움직임은 전방에서 분투한 호날두 다음으로 좋았다.

하프타임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독려가 효과를 본 탓인지 정신적인 흔들림은 가라앉은 듯 했다. 하지만 65분 경, 퍼거슨 감독은 또 한 명의 골잡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투입하기 위해 박지성을 뺐다. 박지성이 빠지자 맨유의 수비 균형은 더욱 더 크게 휘청거렸다. 결국 박지성이 빠진 자리의 공간을 파고든 챠비 에르난데스가 리오넬 메시의 헤딩 쐐기골을 엮어냈다. 맨유는 이 실점으로 추격 의지를 완전히 상실했다. 카를레스 푸욜의 오버래핑도 더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전반전에도 박지성이 오른쪽 측면에 배치되자 티에리 앙리의 공격은 매우 저조했다. 반면 메시는 박지성의 마크를 피해 종횡무진 경기장을 누비며 맨유 수비를 괴롭혔다. 메시는 박지성이 왼쪽으로 이동한 후반전에는 전반에 비해 고전했으나 그가 빠지자 마자 추가골을 만들어내며 바르셀로나에게 승리를 선사했다. 결국 박지성은 맨유가 균형을 잡기 위한 버팀목이었던 셈이다.

맨유 선수 중 가장 많은 활동량을 보였으나 이날 최악의 플레이를 보였던 캐릭은 풀타임을 소화했다. 팀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부지런하고 침착한 플레이로 헌신하던 박지성의 조기 교체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균형과 안정으로 대표되는 박지성을 빼고 오로지 골 만을 위해, 보다 나은 마무리를 위해 결정력이 좋은 선수를 필드 위에 세우려 했던 퍼거슨 감독의 선택은 결국 패착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공격 만을 선호한다던 젊은 주젭 과르디올라 감독이 더 노련한 모습을 보였다. 수비 전력의 큰 공백 속에 오히려 더 균형잡힌 경기가 연출됐다. 때 이른 선제골 덕분이겠지만 엔토의 득점 이후 자기 진영에서 이뤄진 전면 압박과 날카로운 역습은 잘 나가던 때의 맨유를 연상케 했다. 바르셀로나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침착하게 승리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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