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09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은행나무 펴냄)의 출발점이다.
소설가 정유정(43)씨의 경력은 특이하다. 광주기독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로 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9년을 보냈다. 문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작가의 남다른 경험은 오히려 소설에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다. 자신을 옥죄는 운명에 맞서 새로운 인생을 향해 탈출을 꿈꾸는 두 젊은이의 고군분투가 정신병원을 통해 형상화한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말하는 운명과 생존의 이야기다. 누구보다 가깝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배운 작가는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도 꿈은 문학에 가 있었기 때문에 암담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막상 소설을 쓰기 시작하니까 그 시절이 도움이 되더라”며 자신의 이력을 정리했다. “일반인들이 보는 죽음과도 다른 시선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학 3학년 때 정신병원 실습이 소설의 모티브다. 작중 ‘승민’이란 인물은 당시 만난 환자에게서 나왔다. 굉장히 인상 깊었고, 오랜 시간 그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면서 소설을 떠올렸다.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이 질문을 소설로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 폐기했다. 두 번째도 쓰고 또 버렸다”고 한다. 정신병원 폐쇄병동으로 들어가 환자들과 생활하면서 겨우 자신의 질문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 번째 만에 ‘내 심장을 쏴라’가 완성됐다.
폐쇄병동에서 만난 다양한 환자들은 소설 속 인간군상으로 모습을 갖췄다. “여덟명을 만들어 놓고 케이스를 찍었다. 그 분들 곁에 가서 알짱거리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들었다”는 과정이다. “캐릭터 때문에 들어갔는데, 그 외에도 많은 것을 건졌다”며 흡족해했다.
그런 뒤 최초의 질문에 답을 내렸다.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어쨌든 피하거나 돌아가는 것보다는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결론이다. “이 소설이 태도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릎 꿇는 모습을 많이 봐왔는데,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세계문학상은 그동안 김별아(40), 박현욱(42), 백영옥(35)씨 등 작가들을 배출했다. 상금은 1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