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말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율리야 티모셴코(Tymoshenko·48)는 당시 친(親)서방 대선후보였던 빅토르 유셴코(Yushchenko)와 수도 키예프의 독립 광장에서 국기를 흔들었다. '오렌지 혁명'이라 불린 이 민주화 투쟁에서 티모셴코는 러시아에 맞서는 '혁명의 여걸(女傑)'이었다. 2007년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블라디미르 푸틴(Putin) 당시 대통령의 신(新)팽창주의를 비판하고 '러시아 봉쇄'를 주장하는 글을 기고한 이도 티모셴코였다.

그 티모셴코가 변했다. 현재 총리인 그는 지난 4월 말 모스크바를 방문해, "두 나라가 대립하던 시기는 지나갔다"며, 나란히 앉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에게 미소를 지었다.

티모셴코가 '친서방의 기수(旗手)'에서 친러시아로 방향을 튼 배경에는 10월 25일의 대선이 있다. 티모셴코가 출마를 선언한 이 대선엔, 그의 혁명 동지에서 이젠 정적(政敵)이 된 친서방 일변도의 빅토르 유셴코 현 대통령도 출마한다. 그러나 유셴코의 지지율은 2%. 결국 올해 대선은 야당 후보인 빅토르 야누코비치(Yanukovych)와 티모셴코의 양강(兩强) 구도다.

결국 티모셴코는 야누코비치의 지지층이자 전체 선거인의 30%를 차지하는 러시아계의 표를 흡수하려고, 러시아와의 '밀착'을 과시하고 나선 것이다. 러시아의 정치평론가 블라디미르 프롤로프는 5일 "티모셴코 총리가 올해 초 러시아와의 가스 분쟁 때, 유셴코 대통령을 제치고 러시아로 날아가 푸틴 총리와 사태를 해결 짓는 담판을 벌인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로서도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에 티모셴코처럼 국제적 명성이 높은 인물이 이끄는 친러시아 정권이 들어서는 것이 나쁠 리 없다.

러시아가 인근의 친서방국이자 나토 가입희망국 그루지야를 작년 8월 침공했을 때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개입은 이미 게임이 끝난 뒤에야 이뤄졌다. 유셴코식(式)의 친서방 일방 노선은 우크라이나를 제2의 그루지야로 만들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티모셴코의 변신을 초래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