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계속 갇혀서 계약이 깨지면 홍콩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겁니다."
4일째 홍콩 섬 완차이에 있는 메트로파크 호텔에 갇힌 홍춘근(63)씨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홍씨는 4일 낮 11시쯤 홍콩의 한 여행사 직원들과 유력 인사들이 호텔 로비에 찾아와 "힘내라"고 외치고 돌아간 직후 문틈으로 다가와 기자에게 "빨리 나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다.
이 호텔은 지난달 30일 투숙한 멕시코 남성(25)이 '신종 플루' 감염자로 확인되자 1일 오후 4시부터 호텔을 봉쇄해 투숙객과 직원 등 354명을 가둔 채 검사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에서 '아트벤처'라는 투자금융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홍씨는 "홍콩 금융기관들과 각각 10억달러와 30억달러 규모의 투자계약을 오늘 밤과 내일 오후에 잇따라 체결해야 하는데 약속 장소에 못 나가니 미칠 지경"이라고 발을 굴렀다.
같은 회사의 유지영(57) 이사는 "작년에 두 차례 심장 수술을 받아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어렵게 준비한 프로젝트가 깨질까 봐 스트레스를 받아 잠도 못 자고 온종일 누워만 있다"고 말했다.
갇힌 사람 중 상당수는 4일이 넘어가면서 체념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이일환(53)씨는 "처음에는 항의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점점 포기한 채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제저녁은 햄과 밥, 오늘 아침은 빵 2쪽, 점심은 스파게티만 먹었다"면서 "호텔측이 오늘에야 처음으로 청소를 해줬는데 청소와 빨래, 먹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호텔 내부는 엉망이다. 한 서양인은 직접 빨래를 해 널어 놓은 방과 빵 한 개와 물 한 통, 귤 하나만 나온 식판 등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지난달 30일 이후 이 호텔에 묵은 한국인은 이들 3명 이외에 6명이 더 있다. 부부와 딸(대학생) 등 일가족 3명은 호텔에 짐을 놔둔 채 복귀하지 않고 있다. 또 30일 투숙했다가 1일 오전 체크아웃한 한국인 3명은 한국에서 정밀진단을 받고 있다고 홍콩 영사관측이 밝혔다.
기자가 "아무리 사스 파동(2003년) 때 피해가 컸더라도 홍콩 정부의 이번 대응은 좀 심한 것 같다"고 말하자 홍콩 명보(明報)와 TVB 등 현장의 홍콩 기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