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9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첫 대의원 대회를 열고 다음 날에는 새 국방위원회 구성원 전원(12명)의 사진을 모두 공개했다. 이번에 새로 국방위에 진입한 인물은 오극렬과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이다. 이번 인사이동을 후계구도와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머리만 있고 실체가 없는 국방위를 내실화해 최후의 최정예 친위대로 만들려는 김정일의 구상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소식통에 따르면 이제 국방위는 북한의 안보분야(군사· 대남· 국가보위)와 평양시에 대한 모든 것을 총괄하는 체계를 가졌다고 한다.
평양시는 김정일이 거주하는 '혁명 수도'이기 때문에 최근 평양시 건설업무를 총괄하는 장성택이 국방위에 편입됐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로 대남 공작의 총본산인 평양 3호 청사를 국방위가 접수했다. 모든 실무 업무는 노동당 작전부가 개입했고 실무 책임은 작전부장 오극렬이 맡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동안 대남 공작을 해오던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햇볕 정책' 이전의 껍데기만 남은 조직으로 전락했다. 대외연락부의 첩보 활동도 상당 부분 축소되면서 작전부 독주체제가 열리게 됐다. 국방위의 실체화 작업은 김정일의 지시로 오래 전부터 진행됐다고 한다.
인재들이 대외연락부 등에서 작전부로 편입됐으며 국방위의 하부 실무진들은 모두 작전부 소속 요원들로 채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방위 제1부부장 조명록은 고령에 와병 중이고 부위원장 리용무 역시 고령에 김일성 가계 피붙이라는 명분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 인민무력부장 김영춘은 오극렬 계열의 핵심 측근이어서 사실상 오극렬이 김정일 다음으로 북한의 최고권력을 관장하는 제 2인자로 등극한 셈이다. 노동당 작전부는 최정예 특수요원 2천명 이상을 보유한 북한의 최고 특수집단이다.
김정일은 "작전부는 나의 별동대"라고 말할 만큼 절대적인 신임을 보내고 있다. 이런 작전부의 부장을 20년째 역임한 오극렬은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는 측근 중에 측근이다. 오극렬은 항일빨치산 유격대 오 형제로 유명한 오중성의 아들로 구소련 공군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다.
현재 나이는 78세로 알려졌지만 지인들에 따르면 실제 나이는 75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항공사령관을 거쳐 인민군 총참모장을 역임한 전형적인 야전형 군인이다. 오극렬을 잘 아는 군(軍) 출신 탈북자는 "오극렬은 머리가 비상하고 추진력이 있어 야전군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가 김정일과의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88년이다. 당시 오극렬은 인민군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와 마찰을 빚어, 김일성에게 질책을 받고 쫓겨났다. 오극렬은 당시 인민군을 구 소련군 군사시스템과 밀접하게 연계해 현대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또 군대의 당 조직인 총정치국이 지나치게 실무에 개입해 군의 전투력이 저하됐다며 당의 군대 개입 자제도 주장했다. 당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차 사고로 사경을 헤매자 김정일은 사실상 오극렬에게 모든 권한을 맡기려 했으나 다시 오진우가 회복되면서 오극렬은 오진우의 견제를 받았다.
당시 오진우는 오극렬의 군 현대화 방안을 김일성에게 보고했고 김일성은 인민군의 당 장악을 방해하는 오극렬을 질책했다. 그 사건으로 오극렬은 민방위부장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김정일은 오극렬의 실무보고가 일리 있다고 주장하면서 김일성을 설득해 다시 군대에 복직시켰다.
이때부터 김정일과 오극렬은 생사를 함께하는 동지로 김정일은 오극렬이 지휘하는 작전부에 경호요원도 없이 들어갈 정도로 신뢰하게 됐다. 노동당 작전부는 2000년 이후 35실과 대외연락부가 전담하던 해외업무까지 관장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에 이어 2인자로 알려졌던 장성택 노동당 평양시 건설담당 부부장은 김정일의 견제로 권력에서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균형을 유지하던 북한의 권력구도가 오극렬에게 집중되자 그가 딴마음을 먹을 경우 김정일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가능성도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