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정 시인

전원시인·목가시인으로 알려진 신석정(辛夕汀·1907~1974) 시인이 1940년대 초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침탈을 비판하는 등 일제(日帝) 때부터 현실 참여 성향이 강한 시들을 썼던 사실이 그의 미발표 시들을 통해 밝혀졌다.

이번에 발견된 시들은 제국주의 국가에 의한 약소국 침탈의 부당함을 지적한 〈印度(인도)의 노래〉(1942)를 비롯해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다시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는 날〉(1942)과 〈우리도 가을이 오면〉(1940) 등 3편을 포함해 모두 14편이다.

이 작품들은 신석정 시인이 첫 시집 《촛불》(1939)을 발표하기 위해 모아 둔 육필 원고 묶음인 《산호림의 백공작》과 시집 《슬픈 목가》(1947)의 초고 육필 원고 묶음에 들어 있었다.

이 시들은 신석정의 제자이자 이번 주말 발간 예정인 《신석정 전집》(전5권·국학자료원)을 준비해 온 시인·문학평론가 허소라(73) 군산대 명예교수가 전집에 수록할 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허 시인은 "작품들이 쓰인 시기가 조선·동아 두 신문이 폐간당하고 일제의 탄압이 극심했던 때와 같다"며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일본어로 작품을 쓰지 않았던 시인이 당시 이들 작품을 공개할 수 없어 미발표작으로 남긴 것 같다"고 말했다.

'연미복을 입은 신사놈들이 머리를 처박고/(…)/ 한때는 인도의 피를 핥아먹고'라고 한 〈印度의 노래〉에 대해 허 시인은 "영국 제국주의 비판을 통해 우회적으로 일제에 의한 한반도 침략의 부당함을 지적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시 첫머리에 김기림(1908~?)의 장시집(長詩集) 《기상도》의 시행을 인용한 것도 눈길을 끈다. 조선일보 기자였던 김기림과 1924년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하며 등단한 신석정이 보통 각별했던 사이가 아니었음을 방증하는 사례로 분석된다.

〈다시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는 날〉(1942)은 울고 싶도록 감격스러운 해방의 기쁨에 목말라 하는 시인의 심정을 미래에 대한 가정(假定) 형식으로 토로했다. 시인은 "고향도 없는 그 어린 양떼를 데불고/(…)/ 인젠 슬픈 목가도/ 아예 부르지 않겠습니다"라며 "어머니/ 당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이 날이/ 어찌 이다지도 울고 싶도록 즐거웁습니까?"라고 썼다.

〈우리도 가을이 오면〉(1940)은 해방 이후 조국의 모습까지 희망차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조국 독립에 대한 예언자적 시각까지 느껴지는 작품이다. "우리도 가을이 오면/ 달머리같이 파란 쟁반에/ 초생달같이 파란 쟁반에/ 초생달 같은 바나나와/ 토성 같은 임금(林檎)과/ 목성 같은 배(梨)를 담아놓고 앉아서/ 건강한 새벽을 웃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웃으며 짓거려야 할 것이다."

신석정은 시집 《촛불》 《슬픈 목가》에서 전원과 자연에 대한 동경을 노래한 작품을 쓰다가 해방과 전쟁을 겪은 뒤 발표한 시집 《빙하》(1956)부터 현실 문제로 눈을 돌린 것으로 알려져 왔다. 허소라 시인은 "현실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낸 시들이 일반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일찍 쓰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번 발견은 신석정 시 연구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印度의 노래

-넥타이를 한 식인종은 '니그로의 요리'가 칠면조보다도 좋답니다. 살결을 희게 하는 검은 고기의 위력. 김기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에서
모두 피비린내 나는 어둠 속에서
물은 물대로
흙은 흙대로

지구여
네가 비로소 그렇게 갓븐한 몸맵씨로
푸른별들과 더불어
첫 항해의 출발을 비롯한 이후……

어찌 너는
인도를 그 많은 인도를
오랜 세월을 두고 두고
네 어깨에 네 가슴에 혹은 네 품안에
지니고 다녀야만 하였느냐?

지구여! 너는
인도의 목덜미에
인도의 젖가슴에
또 인도의 허벅지에
연미복을 입은 신사놈들이 머리를 처박고
새빨간 피와 흰 젖과 검은 고기까지를 먹어도
네 품안에서 영영 버릴 줄을 몰랐드냐?
지나치게 너그러운 지구여!

한때는 인도의 피를 핥아먹고
한때는 인도의 젖을 빨아먹고
끝내는 인도의 살을 에여먹던
대영제국의 허울좋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멍청한 짐승들이여.

삼림처럼 거룩한 인도의 정신
태양처럼 뜨거운 인도의 심장
이것은 영원히 인도의 것이리라.

항하(恒河)를 인도양으로
인도양을 항하로
네 목대 줄에서 네 가슴에서
흥건히 흘러내리는 그 새빨간 네 피를 마시면서
굴종은 미덕이 아니니라.
인도여 노래를 불러라.

((1942년 3월 6일 夜 병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