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대한민국 건국 시기를 두고 한바탕 시끄러웠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어리둥절한 국민도 많았다. 한 뜸을 들였으니, 이제 차분하게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살펴볼 때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국호(國號), 곧 우리나라의 이름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 모인 독립운동가 대표들이 국가를 세우고 이렇게 이름 지었다. 대한민국의 이름은 바로 그날 정해졌던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말할 때면, 대한민국은 생략하고 임시정부라거나 임정이라고 불러왔다. 줄여 쓴 이유도 있지만 광복 이후 새로 임시정부를 조직하자는 논의가 있을 때, 혼돈을 피하기 위해 중국에 있었던 것을 '상해 임정'이라 표현하던 탓도 있다. 그 바람에 '대한민국 건국'은 잊혀 갔고, '임시정부 수립'만 남았다.
정부와 국회도 우리 역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처음 채택하였다.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은 독립국가인 대한민국을 운영할 조직체였다. 국토를 되찾는 날에는 이를 정식 정부와 국회로 바꾼다고 헌법에 명시했다. 헌법도 마찬가지다. 임시헌장이나 임시헌법은 근대헌법의 출발로, 광복 이후 계승되었다.
태극기를 국기(國旗)로 법제화시킨 것도 대한민국임시정부였다. 태극기 모양이 다양하고 일정한 규정이 없던 것을 규정을 만들어 국기로 정했고, 광복 이후 정부가 이를 계승하면서 일부 손질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국가(國歌)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를 국가로 채택했다. 이뿐이 아니다. 대통령이란 단어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처음 채택했다. 영어의 'President'를 일본에서 대통령이라고 번역했지만, 정작 사용한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1919년 9월 채택한 대통령을 1948년에 그대로 되살려 쓴 것이다. 이처럼 하나씩 들추어내자면 끝이 없다. 그러니 오늘 대한민국의 출발이 어디인지 굳이 따질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이름값을 못했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역할가치가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세력 전체를 장악하지도 못했고, 활동 내용도 심할 경우에는 하나의 단체에 지나지 않았다고 혹평한다. 특히 자신들의 배타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북한은 당연히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객관성이 없기도 하거니와 시야가 좁은 탓이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통치하던 침략제국주의는 10개 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상 대부분의 나라와 종족이 식민지로 전락하여 신음하고 또 해방투쟁을 벌였다. 그러므로 한국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도 식민지해방투쟁사라는 세계사적 차원에서 비교하고 평가해야 옳다.
첫째,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망명지에서 국가를 세우고 정부조직체를 구성하여 침략세력에 맞선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것도 26년 반이라는 길고도 긴 기간이었다. 프랑스와 폴란드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망명정부를 설치하기는 했지만, 3~4년에 지나지 않았다. 둘째,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을 벌이면서 민주공화정을 일구어냈다. 우리가 나라를 잃을 때는 황제가 주인인 대한제국이었지만 되찾아 세울 때는 국민이 주권을 가진 민주국가였다. 서유럽은 근대시민사회를 시민혁명을 통해 달성했지만 한국은 독립운동을 통해 만들어 갔다. '독립운동 근대화론'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우리 독립운동사 전체를 통틀어 대한민국임시정부보다 강한 구심점을 가진 존재는 없었다. 원격제어로 국내행정을 장악하려고 나섰고, 국가와 정부 이름으로 외교활동을 폈으며, 군대를 조직하여 국내진공 작전을 시도했다. 넷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좌·우 대립을 극복하여 통합정부를 이뤄낸 역사적 성과가 평화통일을 갈구하는 현시점에 주는 교훈도 적지 않다.
간혹 영토가 없었고 강대국들이 승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프랑스가 영토를 잃고 망명정부를 꾸렸다고 국가가 없어졌다 말하지는 않는다. 또 열강의 승인이 없었다는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식민지를 쥐고 즐기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의 요구를 들어줄 리가 없다. 이는 지극히 제국주의적인 시각에 빠진 주장일 뿐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출발이고, 독립운동을 통해 근대화를 일궈내는 구심점이었다. 반(反)침략 투쟁만이 아니라 근대화 운동을 펼쳤다는 뜻이다. 그래서 세계사와 식민지해방투쟁사에서 단연 돋보인다. 임정 수립 90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를 제대로 평가하고 이어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