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t짜리 차들이 달리는 원효대교 아래 컴컴한 굴 속에 지난달 25일 오후 인기척이 일었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직원 5명이 1.2㎞ 길이의 원효대교 밑 통로를 걸어가며 안전점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발 아래로 한강, 머리 위로 차량이 지나는 한강 교량 밑 음지에서 그들은 시민 안전을 지키고 있었다.
1981년 완공된 원효대교는 2006년 12월 '이달의 건축환경문화대상'을 받았을 만큼 아름다운 교량이다. 호선(弧線)을 그리는 미인 눈썹 같은 아치형 상판과 계곡처럼 깎아지른 V자형 교각이 대조를 이루는 외관과 달리, 이날 들여다본 원효대교 속은 시커맸다.
◆교량상판 아래 텅 빈 공간이
원효대교 남단 보행자 도로 옆에 내려 달라고 하자, 택시운전사가 기자의 얼굴을 살폈다. "허, 젊은 사람이 왜…." 다리 위에서 '자살소동'이라도 벌일까 하는 시선이었다. 도로 옆 안전지대엔 등산복 차림에 흰색 안전모와 빨간 조끼를 걸친 도시기반시설본부 직원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이날은 본부가 6개월에 한 번 원효대교를 정기 점검하는 날이다. 20명이 5개조로 나눠 교량을 돌아보는데 3개 조는 교량 표면·램프·접속교를, 2개 조는 '박스'라 불리는 다리 속 공간을 살펴본다. 박스는 교량 상판 바로 아래 부분으로, 안이 텅 비어 있다. 박스 안에선 다리의 균열·누수 여부와 경첩(hinge·이음새)이 처진 정도를 점검한다고 했다.
보행자 도로에 붙은 철조망 문을 열자 사다리형 계단이 나왔다. 교량 바깥으로 계단이 하나 붙어있는 모양새라, 오르내릴 때 눈앞엔 한강밖에 보이지 않는다. 계단에는 손잡이도 받침대도 없고 주변을 둘러싼 철조망은 어른 몸무게를 감당할지 의심스러웠다. 기자의 떨리는 다리를 본 발 아래 누군가가 "강을 바라보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계단을 내려가자 교량 상판 바로 아래 교각 주위에 사람이 간신히 서있을 공간이 있었다. 키 160㎝인 기자가 허리를 숙여야 했다. 상판 하부 표면엔 비둘기 배설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인근 도시기반시설본부장이 콘크리트가 부식될 수 있다며 서둘러 치울 것을 지시했다.
◆서늘한 이곳에서 '괴물' 탄생
박스로 들어가는 문을 열자 가로·세로 1.5m 남짓한 정사각형 구멍이 나왔다. 몸을 웅크려야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크기였다. 입구를 지나도 천장이 너무 낮아 무릎을 땅바닥에 대고 엉금엉금 기어야 했다. 아치형 교량 아래라 박스 높이는 낮아졌다 높아졌다 한다. 콘크리트 벽 두께를 포함해, 가장 높은 곳은 5.5m, 가장 낮은 곳은 2.1m 정도다.
밤을 환히 밝히는 서울의 명물 원효대교 안은 어둡고 답답하고, 곳곳에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에서 왜 한강 다리를 괴물이 서식하는 장소로 삼았는지 이해가 갈 만큼 음산했다. 영화 속 괴물은 원효대교 북단 빗물하수장에 살았다.
100m쯤 가자 바닥에 첨단센서와 계측기가 들어있는 상자가 붙어 있었다. 맨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의 교량이 처진 정도와 온도변화에 따른 신축 변화를 점검하기 위해 시설본부가 2004년 설치하기 시작한 상자였다. 도시기반시설본부는 센서·계측기의 데이터를 24시간 온라인으로 모니터링하는데, 행주·성산·행주·서강·가양대교에도 이런 온라인 점검 시스템이 있다.
머리 위로 "철거덕, 쿵쿵" 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고 발 밑이 흔들거렸다. 다리 위를 지나가는 차 때문이다. "가양대교·마포대교처럼 철로 만든 박스를 점검할 때면 차량 소리 탓에 온몸이 '철컹철컹' 울린다"고 류기운 교량안전부장이 말했다.
◆"과거엔 노숙자 아지트 역할도"
원효대교 외에도 한강을 가로지르는 20개 교량 상판 아래엔 빈 공간들이 있다. 다리 하중을 견디기 위한 구조다. 전영부 주임은 "몇 년 전만 해도 양화대교 아래 박스에서 잠자는 노숙인들을 쫓아내는 게 일이었다"고 했다.
일반인들 눈에 교량 밑 세계가 보이지 않는 건 다리 전체 길이에 비해 박스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원효대교 전체 길이는 1.2㎞나 되는데 박스는 높이 2~5m, 폭 6m에 불과하다.
한강 교량의 역사는 성수대교가 무너진 1994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교량 박스의 직접 점검, 6개월에 한번 있는 정기 점검, 2년에 한번 있는 정밀 점검, 5년에 한번 있는 정밀 진단은 모두 '성수대교 학습효과'로 생겼다. 이외에도 관계자들은 수시로 온·오프라인 점검을 한다. 원효대교처럼 성수대교 붕괴 이전 지어진 교량은 집중 점검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