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오후 다섯시쯤이었다. 아버지의 임종(臨終)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에 병원으로 가는 내내 정신 없이 눈물이 흘렀다. 몇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다른 얘기 때문에 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살아서 세상에 좋은 일 한 것도 없는데, 죽어서라도 좋은 일 좀 하자"며 두 양반이 다니던 대학병원에 '시신 기증' 서약을 했다는 것이다. 자식들은 펄쩍 뛰었다. "병원에서 왔다는 직원의 태도도 모셔가면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대학생들이 시신을 얼마나 험히 다루겠느냐", "빈 관으로 어떻게 장례를 치르겠는가"….

어머니는 "아버지와 내가 모두 원하는 일"이라고 설명했지만, 자식들은 막무가내였다. "아버지 뜻을 우리가 직접 확인한 게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 아버지를 보낼 순 없다"고 우겼다. 우리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지배를 받았다. 결국 어머니 입에선 "너희 뜻대로"란 말씀이 나왔고, 우리는 자식의 권리로 시신 기증을 취소했다.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다.

지난달 16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후, 그분의 뜻을 기려 장기 기증을 서약하는 이들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따르면 김 추기경 사후 등록한 장기 기증 희망자는 약 4000여명으로, 지난해까지 한해 평균 3000명 수준을 한달 만에 넘어섰다. 의미 있는 결단을 하는 이들은 이미 늘어나 있었던 상황이어서, 지난해 말 장기 기증 뇌사자 수도 250여명으로 최다를 기록했다.

그러나 떠난 자, 떠날 자들의 의지를 모시는 일은 결코 '선한 마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회생 가능성이 아무리 희박하더라도, 고통스러운 치료를 끝까지, 강제로라도 받게 해야 "그 집 자식들 효자"란 얘기를 하는 게 우리 인심이다. 장기 기증 실현율이 10%에 불과한 것은 망자의 뜻보다는 '유족의 체면'이 더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염습·입관·발인 같은 절차를 중시하는 우리 식 장례 문화도 유족들이 '망자'의 뜻을 거스르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다.

장기 기증말고도 망자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증'의 방식은 다양하지만, 인식은 뒤처졌고, 제도적 뒷받침은 더 열악하다. 사후에 뼈, 연골이나 피부를 기증하는 '조직 기증'은 생명을 연장하고, 장애를 복구하는 또 하나의 생명운동이다. 그러나 지난해 조직 기증자는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100건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대적 '결단'이 필요한 뇌사자 장기 기증 250건보다도 더 적은 것이다.

결국 인식 문제다. 장기 기증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란 인식이 확실한 데 반해, 조직 기증은 "자칫 산 사람들의 돈벌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큰 것 같다. 실제로 지난 10월 비영리법인인 대한인체조직은행이 기증받은 시신을 한 인체조직 가공회사에 지원금을 받고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조직은행측의 반박도 일면의 진실이 있다. 은행측은 24일 "조직 수요의 88%가 수입되는 상황에 국내 조직 기증을 늘리려면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인체 조직을 채취·가공·보관하는 일에는 비용이 든다. 무조건 '윤리'만 강조할 게 아니라 현실에 맞게 지원도 하고, 법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해부학 실습을 위한 시신 기증도 마찬가지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지난 2006년 10월부터 시신기증운동을 중단했다. 이미 충분한 숫자의 시신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지방사립대 사정은 다르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원식 충남대 의대 교수(해부학)는 25일 "3차원 입체영상 등 기술 발전으로 컴퓨터로 인체 곳곳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부학은 사람을 다루는 의사의 기초과목"이라며 "일부 지방 사립대의 경우 학교측 의지도 약한 데다 보관시설 등이 부족해, 해부 실습이 아니라 해부 견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육신을 땅에 내려놓으며 타인의 생명에 도움을 주겠다는 성(聖)스러운 의지를 보면서 마냥 감동이나 찬탄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산 자들은 더 부지런히 움직여 현실적으로 법도 고치고, 예산도 지원해야 한다. 그게 살아남은 자들의 염치(廉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