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롱 환자' '나이롱 대학생' '나이롱 박수'란 말이 있었다. 모두 '가짜'란 뜻이다. '나이롱'은 합성섬유 나일론(Nylon)의 일본식 발음. 나일론은 그만큼 친밀하고, 그만큼 우습게 봐도 될 것 같은 소재였다.
1935년 듀퐁사의 화학자 월리스 캐로더스(Carothers)가 개발한 나일론은 '1939 세계 박람회'에 소개되면서 비로소 세계적 선풍이 일었다. 그로부터 70년. 나일론의 명성은 쇠퇴하기는커녕 최근 경쾌한 패션 붐을 타고 또 다시 '회춘'하고 있다. 특유의 광택과 실용성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
뉴욕 타임스는 최근 "여성들의 다리에서 환영 받던 나일론(스타킹)이 이제 남성복 패션쇼 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다"며 "최근 쇼 무대에서 반짝이는 나일론 윈드브레이커(바람막이 점퍼)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시즌 디올 옴므에서 선보인 다양한 컬러의 윈드브레이커와 집업 재킷, 나일론 가방의 대명사 프라다가 이번 시즌 다시 등장시킨 가방과 의상은 패션 관계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나일론'(nylon)이란 단어가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의 권위 있는 패션 전문지 WWD(Women's Wear Daily) 1940년 2월 9일자에 등장한 듀퐁사의 존 엑켈베리(Eckelberry)는 "'nyl'엔 별 뜻이 없고, 'on'은 코튼(cotton)이나 레이온(rayon)처럼 섬유에 붙인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듀퐁사에서 1978년에 발간한 책자에 따르면 '노-런(No-run)'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런(run)'은 올이 풀려 나가는 것을 뜻하는 단어로, '노-런'은 '올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것.
나일론은 방수·방풍 기능 덕에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낙하산·텐트 등 군용 제품으로도 사랑받았다.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34대 미 대통령이 됨)는 길이가 짧고 몸에 착 달라붙는 신형 나일론 군복을 디자인했고, 이는 아이젠하워의 별명을 따서 '아이크 재킷'으로 불린다. 진짜도 많고, 가짜는 더 많은 '프라다' 패브릭 백 역시 낙하산 천을 재가공해 만든 것이다.
나일론은 배우 제임스 딘(Dean)의 인기에 편승, 이미 1950년대 '패션 코드'로 떠오른 적도 있다. 1955년 작 '이유없는 반항'에서 그가 입은 빨간색 나일론 윈드브레이커는 곧 젊음과 열정, 반항의 상징이 됐다. 당시 제임스 딘의 의상을 제조했던 할리우드의 맷슨스(Mattson's) 상점은 그 재킷만 수천벌 이상 팔았다고 한다.
국내 브랜드로는 코오롱이 대표적이다. 1957년 나일론원사를 생산하는 '한국나이롱'을 설립한 뒤 성장을 거듭해 지금의 코오롱이 됐는데, 코오롱은 '코리아 나이롱'에서 따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