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맏딸 애니는 열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는 이제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대의학은 우리가 '어떻게'(How?) 병에 걸리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지식을 축적했다. 그러나 '왜'(Why?) 병에 걸리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은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
생물학은 다윈의 진화이론 위에 세워진 학문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생물학과 가장 가까운 학문인 의학, 특히 서양의학에는 다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윈의 딸 애니가 죽은 지 꼭 140년 만인 1991년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와 미시간 의대 교수 랜덜프 네스(Randolph Nesse)의 역사적인 논문 〈다윈의학의 여명〉의 출간과 함께 의학에도 드디어 다윈의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네스와 윌리엄스는 1995년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라는 책을 출간했고, 나는 1999년에 이를 번역하여 우리 의학계에 소개했다.
서양의학은 우리 몸을 사뭇 기계 다루듯 한다. 삐걱거리는 자전거 바퀴에 기름을 치듯 손쉽게 약물을 투여하고 중차의 부품을 갈아 끼우듯 장기이식 수술까지 한다. 그러나 다윈의학은 인간의 몸과 마음도 오랜 진화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진화의 관점에서 질병의 원인들을 재분석하고 적응과 조화의 치유법을 모색하도록 권유한다.
현대과학의 첨단기술을 총동원하여 만든 그 어떤 기계보다 월등하게 잘 설계된 우리 몸이 왜 온갖 질병에 취약한 것일까? 다윈의학은 이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자연선택은 애당초 우리의 건강과 장수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늘 병마에 시달리다 요절하더라도 자식을 많이 낳은 사람의 유전자가 건강하게 오래 살았어도 자식을 낳지 않은 사람의 유전자보다 훨씬 더 많이 퍼진다. 건강과 장수는 번식에 유리한 한도 내에서만 자연선택의 대상이 된다. 우리를 공격하는 병원균들은 우리에게 건강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의 번식을 위해 우리와 경쟁하며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하고 있다. 우리보다 세대가 훨씬 짧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무기에 우리는 종종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자연선택은 결코 생명체를 완벽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한쪽 눈을 감은 채 연필을 반대쪽으로 움직이다 보면 정면으로부터 약 20도쯤 벗어난 지점에서 더 이상 연필 끝의 지우개가 보이지 않는다. 망막에 구멍이 뚫려 있어 생기는 맹점 때문이다. 멀쩡한 스크린에 왜 구멍을 뚫어 놓았을까? 척추도 없는 오징어·문어·꼴뚜기 등의 연체동물은 우리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망막의 전면에 붙어 있는 시신경들을 뇌로 보내기 위해 구멍이 필요한 우리와 달리 연체동물의 시신경들은 망막의 뒷면에 붙어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디자인 때문에 우리는 때로 시신경으로부터 망막이 떨어져 나와 안과 수술을 받아야 한다. 신은 왜 우리에게 꼴뚜기보다도 못한 눈을 주셨을까?
몇 년 전 미국 정부가 정식 질병으로 규정한 비만은 진화의 방향과 우리 스스로 만든 새로운 환경이 상충하며 생기는 현상이다.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시절 달고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도록 진화한 인간이 칼로리 높은 음식이 넘쳐나고 운동량이 현격하게 줄어든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문명사회 속에 살아온 지난 1만년은 괄목할 만한 진화를 기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우리는 모두 졸지에 현대사회에 던져진 석기시대 사람들이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거의 모든 의과대학에 초청되어 다윈의학에 관한 강의를 했다. 내 강의를 들은 대부분의 사람은 의학과 진화생물학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의과대학의 교과과정을 바꾸는 일은 헌법을 개정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의과대학 중 32%가 진화생물학 관련 과목들을 개설했고 16%는 진화생물학자를 교수로 채용했다고 한다. '다윈의 해'가 저물기 전에 우리나라 의과대학들에도 본격적인 다윈 바람이 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