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봄, 나는 가톨릭종합잡지 '창조'지의 비어(蜚語) 필화사건으로 마산 가포결핵요양원에 연금돼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님을 처음 만난 것은 그때다. 그때 그곳에서 환자들을 위한 김민기·양희은 두 사람의 음악회가 있었다. 나는 그 음악회장 뒤편에 서서 두 사람의 듀엣을 듣고 있었다. 그때 내 등 뒤에 누군가의 묵직한 걸음이 멈춰서는 것을 느끼고 뒤돌아보니 거기 신문 사진에서 뵌 적이 있는 추기경님이 서 계셨다.

"김 시인이죠?"

"네."

바로 그때다. 추기경님이 당신 목에 감고 계시던 흰 로만칼라를 손으로 확 잡아떼셨다. 깜짝 놀랐다. 가톨릭의 엄연한 권위의 상징인 로만칼라가 아닌가. 왜? 그날 밤 마산교구청장 주교님 방에서 둘은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단된 이 나라에서 가톨릭까지 정부를 반대한다면 큰 혼란이 오지 않겠는가?"

"현 정권은 역사상 최강입니다. 군·재벌·중산층·미국과 일본의 지지 등 막강합니다. 쓰러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참다운 조국통일 역량을 구축해야 합니다. 북한의 소아병적 극좌정권 가지고 통일 논의가 가능하겠습니까? 역량 구축의 방법은 정치훈련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니 현 정권은 우리의 스파링 파트너인 셈입니다. 쓰러질 염려는 없습니다."

"자네는 머리가 좋은 건가 공부를 많이 했나?"

"둘 다 아닙니다. 상황이 인간을 결정하는 실존적인 경우일 뿐입니다."

"나는 촌사람일세. 그런데 자네는 분명 도시사람. 도시사람이 언제나 일을 저지르지. 하지만 뒷마무리는 꼭 우직한 촌사람이 하더군."

이것이 첫 만남이다. 이어서 여러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1973년 봄 우리의 결혼식 주례사에서다.

"부부가 일심합력하는 데엔 비상한 결단이 요구된다. 더욱이 당신들은 예상되는 비바람에 대비하여 참으로 비상한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잊히지 않는 말씀이다. 아내가 만삭이 되었을 때 나는 모래내에 숨어 있었다. 피신처에서 밤마다 어린애 울음소리의 환청에 시달렸던 때가 그때다. 아내가 걱정되었다. 어느 날 밤 명동 추기경님 방에 스며들어 간 나는 추기경님께 아내의 성모병원 입원과 출산과정에서의 보호를 부탁드렸다. 흔쾌히 수락하시는 답변을 듣고 돌아서는 내 등 뒤에 와서 꽂히던 한 말씀을 지금도 내내 잊지 못한다.

"어떤 고통 속에서도 한 아이의 아버지란 사실을 잊지 말게."

아아. 내가 이 말씀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영등포 감옥에서 출옥하던 그 추운 겨울 밤 맨 먼저 인사차 찾아온 내 앞에 추기경님이 아무 말씀 없이 내민 것은 한 잔 가득히 따른 위스키였다. 술!

술 좋아하는 내게 그분이 제일 먼저 주신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다. 이 일은 지금도 내게 '대인접물(對人接物)'의 모심의 비밀을 일깨워준다. 재구속되어 꽉 막힌 독방에 갇힌 채 책은 물론 성경조차 주지 않던 나의 적막한 긴 세월을 박 대통령에게 직접 간청해서 예수의 깊은 신비를 접하도록 마음 써주신 것도 그분이다. 나의 어린 아들에게 하느님의 참 거처를 가르쳐주신 것도 또한 그렇다. 아들 원보가 추기경님께 물었다.

"하느님은 어디 계세요?"

"여기."

임이 손으로 가리킨 것은 하늘이 아니라 가슴이었다.

긴 독방살이는 정신착란의 원인이 된다. 어느 날 천장이 내려오고 벽이 다가들어 왔다. 가슴을 쥐어뜯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마구 외치고 몸부림치게 되었다.

내가 사활을 건 백일참선을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다. 참선은 이상한 것이어서 극에서 극으로, 새하얀 갈대밭에서 새카만 개골창으로, 극도의 혐오감에서 극도의 육욕으로 왔다갔다하다가 어느 날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텅 빈 공백이 드러나 며칠을 지속하다가 또다시 흰빛, 또다시 검은 그늘 사이를 왕래한다.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일체집착은 허망하다는 것. 그 허망함 속에서 동터오는 참빛이 다름아닌 사랑이요 화해요 모심이라는 것.

그 목숨을 건 백일참선이 끝난 바로 그 이튿날 정오 소내(所內) 특별방송은 박정희 대통령의 피살 소식을 전했고, 이튿날 정오 역시 소내 특별방송은 고인의 장례식 뉴스를 전했다. 그 첫 번 추도사가 추기경님이었다. 추기경님의 첫마디는 "인생무상."

나는 지금 집안의 신앙을 따라 동학의 길에 서서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융합을 고민한다. 그 고민의 바탕에 '인생무상'이 있고, '인생무상'의 저 아득한 첫 샘물자리에 임의 벗겨져 나간 흰 로만칼라가 하얗게, 새하얗게 빛나고 있다. 부디 잘 가소서. 그리고 '가시난닷 다시 오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