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90, 62, 50, 44, 39, 28, 26, 24

위의 숫자들은 2009학년도에 서울대 입학생들을 출신학교별로 구분해 많이 보낸 학교부터 1위에서 10위까지를 나열한 숫자이다. 지난 2월 12일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2008년에 고등학교,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 있는 학교에서 고3 담임을 맡았던 필자도 큰 관심을 가졌다.

문제는 이 정보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어느 고등학교가 어느 고등학교보다 좋은 학교'라느니, '어떤 고등학교의 파워가 약해졌다'느니, '우리 애가 그 학교에 가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느니 등의 말들이 오가고 있다. 결국 서울대 입학인원에 대한 단순한 수적인 나열이 고등학교를 우등한 학교부터 열등한 학교 순으로 서열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상식적으로 학교 간에 실력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대 입학생 수만을 가지고 일선고등학교의 실력을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없다.

우선 그 숫자는 학과를 묻지 않는다. 물론 모 언론에서는 학과별 이름을 명기해 놓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것은 학과의 이름이 아니라 입학한 숫자다. 그 숫자 앞에서 학생 개개인의 꿈과 희망, 개인적 소질이나 실존적 고민은 아무런 존중할 거리가 되지 않는다.

또한 숫자들은 각 고등학교의 상황을 반영하지 않는다. 100명 중 1명과 10명 중 1명은 분명히 다르다. 필자가 몸담는 학교는 전체 학급수가 14개였지만 어떤 학교는 10개, 또 다른 학교는 12개 등 지원자 수는 학교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뿐만 아니라 입학부터 출발선이 다른 특목고를 일반고와 비교해 10위권에는 일반고가 1개밖에 없다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옳지 않다.

또한, 이공계열의 모집인원 수가 인문사회계열보다 상대적으로 많으므로 외국어고보다 과학고가 유리하고, 이공계열 학생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남고가 여고보다 더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숫자에는 올해 고3과 재수생들이 포함된 숫자이다. 모 학교에서 지난해 진학성적이 신통치 않았기에 그 예비군(?)들의 선전으로 올해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 것도 나열된 숫자가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유 중 하나라 하겠다.

논리학의 귀납적 오류 중 '편향통계의 오류'라는 것이 있다. 귀납적 추리는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들조차 그와 동일한 성질을 가졌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사고방식이다. 늘 맛있는 사과를 주던 가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가게에서 사는 사과는 언제나 맛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추리가 건전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근거가 되는 사실을 폭넓게 그리고 깊이 있게 다뤄야만 한다. 모든 면을 살필 수는 없어도 가능한 한 많은 면을 아주 객관적인 관점에서 고려하도록 애써야 한다. 상자에 들어 있는 사과를 살 때는 가능하면 아래층에 깔린 것들도 살펴보고 언제, 어디서 수확된 것인지도 꼼꼼히 따져야 한다.

'편향통계의 오류'는 이와 같은 논리적 사고의 기초를 무시하는 가장 대표적인 불건전 추리형태이다. 특정한 면만을 보고서 전체가 그러하리라고 성급하게 결론짓는 성급한 일반화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자기 입장에 도움이 되는 사례들만을 보고서 결론을 내릴 때 쉽게 빠지는 논리적 함정이다.

이는 논리학을 구태여 배우지 않더라도 고등학교 국어 시간, 혹은 윤리시간에 배우는 상식적인 내용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과 학구열을 가졌다는 한국사회에서 이와 같은 상식 수준의 논리적 오류를 저지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확하지만 건전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통계를 곧이곧대로 믿고선 소중한 자녀를 맡기는 학교에 대해 벌써 이러쿵저러쿵 엉뚱한 말을 옮기는 사람들은 필자 주변에만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