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성사로 죄에 죽고 유기(有期) 서원으로 주님께 봉헌된 형제들은 앞으로 하느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주례 황인국 몬시뇰)
"되어 있습니다."(서원자들)
2일 오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종신(終身) 서원식'이 열린 서울 용산구 천주교 순교성지 새남터성당. 1000여 신자가 자리를 가득 메웠지만 이 순간만큼은 질문과 대답 외에는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았다.
종신 서원식은 천주교 수사(修士)나 수녀(修女) 등 수도자가 되기 위한 긴 여정의 마지막 관문이다. 이날 종신서원을 한 4명도 지원기(期), 청원기, 수련기(이상 각 1년)와 유기(有期) 서원(4년)을 거쳐 수도회 입회 후 길게는 10년, 짧게는 7년 만에 이 자리에 섰다.
문답 후 성인호칭 기도 순서에서 서원자들은 바닥에 온몸을 뻗고 엎드렸다. 서원문을 낭독한 후 서원자들은 백색 도포를 한 벌씩 받았고, 황석모 총원장은 이들이 한 가족이 됐음을 선언했다. 검은색 수도복 위에 흰 도포를 걸치고 정식 수도회원이 된 이들을 모든 수도원 식구들이 얼싸안으며 환영했고, 일부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유기 서원까지는 사회로 돌아갈 여지가 있으나 종신 서원 후에는 '정결, 청빈, 순명(順命)'으로 하느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황 몬시뇰은 강론을 통해 "종신 서원하는 여러분들은 앞으로 현세(現世)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고 자신을 변화시켜 주님께 모든 것을 봉헌하고 이웃에 봉사하는 일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로 살아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종신서원을 한 류재형(33) 수사는 "고통의 시작인 소유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고 하느님과 하나되는 것은 최고의 보람이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국 순교 성인들의 정신을 따라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1953년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수도회인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이날 종신서원식을 거행한 것은 매년 2월 2일이 천주교의 전통적인 '주님 봉헌 축일'이기 때문이다. 탄생 40일 만에 모세의 율법을 따라 성전에서 아기 예수의 봉헌 예식이 거행된 것을 기념해 매년 2월 2일을 전후하여 전국의 많은 수도회가 서원식을 갖는다. 2월에만 작은예수수도회·작은예수수녀회, 나자렛예수수녀회 본원(이상 5일), 까리따스수녀회(광주 본원·8일),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양산 무아의 집·9일), 꼰벤뚜알프란치스코수도회(대구 월배성당·11일)의 종신서원식이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