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2월 1일 수만명의 인파가 이란 테헤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친미(親美) 정부로 무능하고 부패했던 팔레비 왕조를 몰아내고 이슬람혁명을 이끈 루홀라 무사비 호메이니(Khomeini ·1900~1989)가 14년간의 망명생활을 끝내고 조국의 땅을 밟는 순간이었다. 이후 이란은 미국과 철저히 단절하고 이슬람이라는 정체성(正體性)을 내세웠다. 하지만 현재 이란은 핵 개발 의혹 속에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유엔의 경제 제재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호메이니가 꿈꿨던 30년 뒤의 이란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가 남긴 15명의 손자·손녀 중에서 외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장하며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호메이니의 자손들은 이슬람혁명의 영광이 시들어가자 '개방'을 원하는 개혁파들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1일 보도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호메이니의 손자 하산 호메이니(37). 공식 직함 없이 이란 정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하산은 작년 호메이니가 창설한 이란혁명수비대가 정치에 참여해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키워가는 것을 대놓고 비판했다가 보수주의자들의 눈총을 받았다. 하산은 또 극우 보수주의자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Ahmadinejad) 대통령의 정치에도 반대한다. 그는 "과거를 따르는 것이 항상 최선은 아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산의 이런 언행(言行)에 보수 성향의 웹사이트 '노사지(페르시아어로 재건이라는 뜻)'는 "하산이 할아버지(호메이니)의 뜻을 거스른다"고 비난했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호메이니의 손녀 아흐라 에슈라기(Eshraghi)는 아예 개혁파와 결혼했다. 그녀의 남편은 개혁운동을 선두에서 이끌며 서방과의 대화를 계속 시도했던 모하마드 하타미(Kahtami) 전 이란 대통령의 동생 레자 하타미. 에슈라기는 이런 배경 탓에 2004년 총선에선 강경 보수주의자들로 구성된 헌법수호위원회로부터 입후보 자격이 박탈되기도 했다. 에슈라기는 공공연히 "30년 전 세상이 개혁과 쿠데타의 시대였다면 이제 진보의 시대"라며 "지금은 (이란이) 고립할 때가 아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손자 알리 에슈라기(39) 역시 다음달 14일의 총선에 출마를 신청했지만 내무부의 1차 자격 심사에서 탈락했다가 최근 다시 구제됐다. 1차 심사 탈락자는 대부분 개혁 성향의 인사였다.
하지만 이들 호메이니의 자손들은 개혁이야말로 호메이니의 유지(遺志)를 받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산은 "우리는 할아버지가 주창했던 신정(神政·최고 성직자에 의한 통치) 아래 민주주의가 부활하기를 진실로 희망한다"고 말했다. 실제 호메이니도 이슬람혁명 이후 권력을 독차지한 성직자들이 시민들의 자유를 억누르자 성직자들이 국가의 단합을 해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