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연쇄살인범 강호순(39)의 행적을 분석한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강은 전형적인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이른바 '사이코패스'(psychopath)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사이코패스의 주요 진단 기준은 ▲성적으로 난잡하고 ▲사회적 규범을 지키지 못하며 ▲거짓말을 반복하고 ▲충동적·공격적이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共感)하지 못하고 ▲죄책감 없이 타인을 해치는 것 등이다.
전문가들은 또 강이 "전처가 화재로 사망한 뒤 충격을 받고 살인을 시작했다"고 범행동기를 밝힌 데 대해 "이해할 수도, 신뢰할 수도 없다"고 했다.
◆"정장 입은 뱀 같은 사이코패스"
백석대 김상균 교수(경찰학과)는 "사이코패스는 한마디로 '정장을 입은 뱀'"이라고 했다. 사이코패스는 편집증·강박증·분열증 환자와 달리 '현실감각'을 잃지 않는다. 따라서 내면은 폭력적이고 교활해도 겉보기엔 멀쩡하다.
실제로 강은 이웃과 직장 동료들에게 '친절한 아버지', '사근사근하고 일 잘한다'는 평판을 얻었다. 그러나 강의 전처들은 "폭력적인 성향이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 교수는 "희생자들이 쉽게 강의 차에 동승한 것도 강이 겉보기엔 위협적인 느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외톨이'의 망상이 사이코패스로
강원대 홍성열 교수(심리학과)는 "사이코패스 살인범의 공통점은 이들이 '외톨이'라는 점"이라고 했다. 사이코패스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혀서 잔혹한 망상에 젖고, 성장한 뒤에는 죄책감 없이 행동으로 옮긴다. 내면에 축적된 노여움이 한순간에 폭발하면서 충동적으로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도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다. 강이 A(여·21세)씨를 살해한 뒤 열 손가락 끝을 예리한 흉기로 훼손했다는 점이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백석대 김 교수는 "사이코패스 살인범들은 시신을 불에 태우거나 훼손하는 데서 희열을 느낀다"며 "강도 살인을 저지르고 시신을 훼손하면서 감정적 절정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충동 조절 장애자일 수도"
그러나 반론도 있다. 강의 행태는 사이코패스보다 '충동 조절 장애'에 더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한남대 이창무 교수(경찰행정학과)는 "강의 첫 살인은 우발적이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후 살인에 대한 저항심리가 약해지는 이른바 '문턱 효과'가 나타난 것 같다"며 "살인을 통해 강한 자극을 맛본 뒤 이보다 더한 자극을 찾을 수 없어 살인을 반복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첫 살인을 저지른 뒤 경찰이 자신을 붙잡지 못한 데 자신감을 얻은 강은 ▲스타킹으로 희생자의 목을 조르고 ▲노래방 도우미와 버스정류장에 혼자 있는 여성을 노리는 등 첫 살인 때 쓴 수법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이 교수는 "성공에 의한 학습효과"라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이홍식 교수(정신과)는 성 충동에서 범행의 원동력을 찾았다. 이 교수는 "강은 네 번 결혼하고, 복수의 성적 파트너가 있으면서도 계속 새로운 대상을 찾았다"며 "끊임없이 성을 갈구하는 '성 충동 무절제자'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했다.
◆전처 사망으로 충격받아 살인?
서울아산병원 정석훈 전문의(정신과)는 "정상적인 사람이 일시적으로 자포자기해서 강 같은 범죄를 저지르기는 어렵다"며 "강이 치밀한 수법으로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을 보면 단순한 심리적 충격에서 출발한 범행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